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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색
얄궂다. ‘내-색(色)’. 색을 냄, 색을 내보임, 마음에 느낀 걸 얼굴에 드러냄. 그런 뜻이라면 ‘색내’나 ‘색냄’이라 해도 됐을 텐데, 굳이 동사 ‘내다’를 ‘색’ 앞으로 보냈다. ‘놀토, 먹방’ 같은 말이 만들어질 조짐이 오래전부터 있었나 보다.
무술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격동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두렵지만 두려운 내색을 하지 말고, 즐겁지만 즐거운 내색을 하지 말라는 것. 평정심과 항구여일의 풍모를 잃지 말라는 것. 무표정한 얼굴(포커페이스)을 하라는 게 아니다. 변함없는 얼굴을 하라는 것이다. 평소에 웃는 얼굴이라면 싫은 사람이 나타나도 웃고, 늘 째려보는 얼굴이라면 두려운 사람이 나타나도 째려보라는 것. 상대에게 나의 촐싹거리는 마음을 낯빛으로 티 내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의 격랑은 얼굴에 미세한 변화를 가져와 눈 밝은 사람은 금방 눈치를 챈다. 그만큼 위험해진다. 평정심을 잃었을 때도 평정심을 잃은 내색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세상’인데, 뭘 그리 억누르며 사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 시대는 감정과 행동을 일치시키라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라는 구호가 드높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은 순간순간 ‘내색하기’에서 결정난다. 싫은 내색을 할지 말지, 좋은 내색을 할지 말지, 두려운 마음을 내색할지 말지. 내색을 하여 운명의 축이 바뀔지, 내색하지 않아 인연의 끈이 뒤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내색할지 말지’를 생각한다는 건 마음속에 검색대 하나를 세우는 일이다. 지금 당신 마음에 일렁이는 감정을 타인에게 내색할지 헤아려 보라. 나는 오늘도 분하지만, 비겁함이 습관이므로 내색하지 않는 쪽으로 살련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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