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반대말
‘낮’의 반대는 ‘밤’, ‘살다’의 반대는 ‘죽다’. 반대말은 어떤 상태의 양쪽 끄트머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 사이에 있는 우여곡절은 놓치게 하지. ‘깨끗하다-더럽다’ ‘따뜻하다-차갑다’ ‘다정하다-무정하다’처럼 사회문화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하지.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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