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
볼수록 특이하다. 여염집이나 가게 벽에 무심히 걸린 ‘가화만사성’, ‘진인사대천명’ 같은 한자성어를 볼작시면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식으로 그 문구가 뭔 말인지 그대로 해석이 되건만, 이 말은 어쩌다가 이리 삐뚤어졌을꼬.
‘독불장군(獨不將軍)!’ 한자 그대로는 ‘혼자서(獨)는 장군(將軍)이 될 수 없다(不)!’는 뜻. 타인과 협력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단 말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독목불림, 獨木不林)는 표현이 있다.
웬걸, 그런 뜻은 온데간데없고, 이젠 정반대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다니. 하기야 세상사 한 끗 차이. 독불장군도 좋게 봐주기만 한다면 ‘뚝심 있다’, ‘결단력 있다’, ‘카리스마 넘친다’는 칭찬을 들었을 테지. 나처럼 신념도 줏대도 없는 사람이 듣기 십상인 ‘허당, 흐리멍덩이, 허수아비, 말년병장’이란 놀림보단 백배 흐뭇할 듯.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까. 자기 경험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반대로 사랑이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갖는다더라.
내 의지의 관철은 타인의 의지의 좌절을 뜻하는 것이니 독불장군 주변에는 사람이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아첨꾼이나 자리를 탐하는 해바라기들만이 즐비할 뿐. 힘없는 사람들은 짐짓 모르는 척하지만, 뒤에선 수군수군 경멸과 냉소를 날린다. 그래서인지 ‘독불장군’이란 말엔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이란 뜻도 있더군. 친구여, ‘자기 멋대로’와 ‘외로움’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오.
만인의 ‘씨’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김진해 교수입니다’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직업명을 이름 앞에 놓는 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뒤에다 붙이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거 같아 싫다.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은 주변 인물들 몇몇에게 이렇게 불렀다, 이를테면 ‘김진해씨!’
호칭엔 위계와 귀천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다. 신문에선 이를 세가지 방식으로 실현한다. 첫째, 정치·경제·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사람에겐 이름 뒤에 그의 직위를 붙인다. 둘째, 일반시민에겐 ‘씨’를 붙인다. 셋째,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에겐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롯데의 이대호, 배우 박은빈, 피아니스트 임윤찬).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대한제국 시절 발행된 <독립신문>을 보자. ‘대황제 폐하’나 ‘임금’처럼 군주만 빼면, 비교적 일관성 있게 모든 사람에게 ‘씨’를 붙였다. ‘전 군수 이병륜씨’, ‘전 참판 박기양씨’. 현직에도 ‘고등재판소 재판장 이유인씨’, ‘황주 군수 김완수씨’. 다만, 죄지은 사람에겐 ‘씨’마저 안 붙이고 ‘철원군 아전 박기병이가’, ‘공주에 사는 한병순은’이라 썼다. 군주제 국가의 신문에서도 호칭이 자못 평등하였으니, 어찌 이를 모범으로 삼지 않으리오.
언어적 평등의 실현에 애써온 <한겨레>가 “오늘부터 우리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기로 한다.”고 선포해 버리는 거다. 공정과 상식, 정의가 차고 넘치는 지금이 호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최적의 시기다. ‘롯데의 이대호씨’와 ‘대통령 윤석열씨’. 당장은 어색해도 나중엔 좋지 않겠는가.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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