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전을 다시?(2)
지난주 칼럼을 보고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 등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쳐온 박일환 선생님이 댓글을 다셨다. “국가 사전을 없애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을 포기할 리 없다. 어차피 개정할 거면 방향이라도 제대로 잡고 숱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어사전이 가야 할 길’, ‘국어사전 이렇게 만들자’는 내용을 담은 책을 서둘러 내야겠다.” 하지만 차마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다시 에둘러 설득해본다.
산불이 휩쓸고 간 숲은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2000년 최악의 피해를 본 강원도 고성은 처음으로 피해지를 반씩 나눠 인공 조림과 자연 복원을 진행했다. 인공 조림지엔 소나무를 들입다 심었다. 자연 복원지는 숲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놔두었다. 그랬더니 조림지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생물량을 축적해 20년이 지나니 ‘풀-떨기나무-작은키나무-큰키나무’로 이뤄진 전형적인 숲 구조를 갖췄다(정연숙 강원대 교수).
국가 사전은 인공 조림을 닮았다. 전쟁으로 전국이 민둥산이었을 땐 인공 조림이 산림녹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인공 조림은 불에 취약하고 자생력과 다양성이 떨어진다. 자연 복원은 산불에 대한 저항력뿐만 아니라 생물종 다양성, 수자원 보호, 토양 보전, 수려한 경관 등 공익적 가치가 더 높다.
옷깃을 여미며 제안한다. ‘사전 생태계, 어떻게 복원할까’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자. 국립국어원, 사전 편찬 전문가, 글로 밥벌이하는 사람들, 시민 독자들이 모이면 좋겠다(그 자체로 생태적이겠군). 한겨레신문이 주최해주길.
국가 사전을 다시?(3)
일본의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짧고 간결하며 객관적인 뜻풀이가 특징이다. 편집자 겐보 히데토시는 ‘사전은 거울’이라는 신념으로 일본어의 ‘현재’를 반영한 사전을 만들기 위해 당대의 낱말과 용례를 집요하게 수집한다. 잘못 쓰이는 것도 있는 그대로 실었다. 반면에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주관적이고 독특한 뜻풀이가 특징이다. 편집자 야마다 다다오는 ‘사전은 문명비판’이라는 신념으로 색다르고 장난기 넘치는 뜻풀이를 했다. 두 사람의 신념은 전혀 다른 성격의 사전을 탄생시켰고, 4천만부가 팔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사사키 겐이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상상하지. 국립국어원에도 좋은 사전을 만들려고 평생 낱말들을 찾아 모으고 어떻게 뜻풀이할지 골머리를 앓는 학자들이 즐비할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 없다!(있어서도 안 된다.) 국립국어원은 다양한 언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탈피하여, ‘사업의 외주화’에 익숙해진 ‘사업관리기관’으로 승격하였다. 사업의 외주화는 말과 관련한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단,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단기간에! 개정판 사전도, 지난 사전처럼 국립국어원이 ‘사업 관리자’가 되어 마치 조각보 만들듯이 전국의 언어학자 수백 명을 동원해 표제어 나눠주고 뜻풀이와 용례 제시를 맡길 것이다. 지난번에 7년이 걸렸는데, 이번엔 5년 만에 주파 목표. 놀라운 속도전이다.
‘편찬 지침이 있으니 문제없다’고? 물론이겠지. 다만, 말의 본질은 왜곡되고 사전엔 개성이 사라지며 말을 국가가 통제하는 꼴을 21세기에도 봐야 할 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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