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노릇
‘효자, 효녀’ 같은 뻔한 반대말도 맥락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떤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되는 역할을 빗대어 ‘효자 노릇’이라 하지 ‘효녀 노릇’이라 하지 않는다. 힘이 센 ‘효자’에게 대표 자격을 줬다.
‘코로나로 망친 섬유 수출, 마스크가 효자 노릇’, ‘소방 드론, 화재 현장서 효자 노릇’, ‘코로나로 주목받는 김치, 수출 효자 노릇 톡톡’처럼 성 중립적인 ‘마스크, 드론, 김치’도 모두 ‘효자’로 비유된다. 이런 남성 대표어가 여성 영역까지 대표하면 야릇해진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게 싫은 부모들이 딸들에게는 인형을 많이 사줬다고 한다. 그 여파로 바비 인형 매출이 급등했다. 신문에서는 ‘바비 인형이 해당 업체의 제품 중 가장 많이 팔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마른 백인 여성’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바비 인형이 다시 잘 팔린다는 소식도 탐탁지 않은데, 그마저 ‘효녀 노릇’이 아닌 ‘효자 노릇’이라고 하니 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8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여자양궁은 여전히 ‘효자 종목’이고, 화장품을 팔든 란제리를 팔든 수익률만 높으면 다 ‘효자 종목’이다.
반면에 ‘효녀 노릇’은 제자리다. 부모 섬기는 일을 넘어서지 않는다. 비유적 쓰임에서도 성 역할의 낙차를 느낀다. 말에는 사회적 무의식이 담겨 있어서 곱씹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다. 글 제목을 ‘효녀 노릇’이라 달아 ‘효녀’의 의미가 약진하기를 바라는 얕은꾀를 쓴다.
생각보다
군더더기 말 때문에 속내를 들키는 경우가 많다. 나/우리의 ‘속내’는 온갖 판단과 부조리와 모순과 욕망과 이기심과 열등감과 속물근성과 허세로 가득하다. ‘진솔함’은 이 추악한 속내를 남김없이 쏟아내는 게 아니다. 그걸 없애는 일의 어려움(불가능함)과 실패를 실토하는 거다. 세상은 추악한 속내를 숨기질 못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들 때문에 추해진다. 말을 할 때 이런 ‘속내’가 드러나지 않도록 머뭇거리고 조심해야 한다.
‘생각보다’라는 말은 나도 모르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상대에 대해 미리 어떤 기대나 예측,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못생겼더라’, ‘생각보다 일을 못 해’, ‘생각보다 안 어울리네’처럼 부정적인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군’, ‘생각보다 멋있네요’처럼 겉보기에 칭찬으로 들리는 말도 상대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별로였음을 몰래 감추고 있다. 그냥 ‘일 잘하는군’, ‘멋있네요’라고 하면 된다. 마음속 생각과 입 밖으로 끄집어낼 말은 같을 수 없다. 생각과 말이 일치할 때 도리어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모든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굳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시시콜콜 보여줄 것까지는 없다.
진정한 행복은 ‘속 시끄러운’ 생각을 멈추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시끄러운 소리는 그것대로 놔두더라도 밖으로 드러나는 말은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조심해야 한다. 편협한 자신이 드러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되, 표현은 절제해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