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낡은 사회를 개혁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취지는 좋으나 방법이 서툰 탓일 수도 있고, 주도세력이 너무 성급하게 군 탓일 수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조직문화 혁신방안’을 마련했는데 언어와 연관되는 것이 ‘수평적 호칭제’라는 것이다. 서열이나 차별이 없는 평등한 호칭을 사용해보자는 좋은 취지로 보인다.
처음에는 교사와 학생 간에 같이 별명도 사용하며 수평적 호칭을 쓰자는 제안으로 알려져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것이 교사들 사이 혹은 교사들과 행정부처 사이의 호칭을 수평화하자는 것이라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의 호칭 체계가 사회 구석구석 권위의식과 차별의식을 뻗어나가게 하는 넝쿨 손이 되어버린 만큼 교육계가 시범을 보이자는 뜻은 획기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무척 서툴렀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범용화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에다 권위적으로 보이는 ‘장학관님’이라든지 선생님이란 말 앞에 ‘직위’를 붙이는 호칭을 삼가도록 하는 ‘공공용어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여기에다가 일종의 통속어인 ‘쌤’ 같은 말을 예로 든 것은 어처구니없는 패착이었다.
통속어는 규범적 언어도 아니지만 금기어도 아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면 쓸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공문서’에 문서화했다는 것은 감성적 언어를 참 무신경하게 다룬 것이다. 종종 졸업생들이 스승의 날에 다정한 편지를 쓰면서 사용하기도 하는 이 단어를 이제는 함부로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교육감의 말처럼 교사들을 중심으로 수평적 호칭을 사용하도록 노력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는 다정한 호칭을 쓸 수 있는 기본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감성적 언어를 공문서를 통해 하명하려고 했다는 그 발상 자체가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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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틀린 말
대개 잘못된 말이 눈에 띄면 샅샅이 잡아내서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마치 교문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 옷차림을 바로잡아주던 ‘규율부’나 ‘학생지도교사’ 같은 기분으로 규찰하려는 것이다. 국어를 반드시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의 산물이다.
국어를 그렇게 긴장된 마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언어란 본래 장난, 유희, 희롱의 기능도 있다. 또 더 나아가 비판과 조롱, 풍자까지도 가능하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맞춤법이니 표준어니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거나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국해우원’이나 ‘국개의원’이라는 표기는 단순히 ‘틀린 맞춤법’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비튼 것이다. 그리고 조롱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궁민’도 마치 ‘궁색한 국민’이라는 자조가 느껴진다.
의미의 확장보다는 거친 의미를 장난처럼 가볍게 만드는 경우도 눈에 띈다. 원래는 불쾌한 욕인데도 ‘넘’과 ‘뇬’으로 비틀면서 본래 의미를 살짝 스쳐 지나간다. 비슷한 방식으로 맥락을 가볍게 만드는 ‘감솨’도 자주 쓰인다. ‘했지?’라는 모범생 같은 질문을 ‘했쥐?’ 하며 친근감을 장난스레 표하기도 한다. 그런 감각을 가져야 ‘말아톤’이나 ‘반창꼬’ 같은 영화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컴퓨터 탓이기도 하고 그 덕이기도 하다. 지난날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낄낄거리며 소곤대던 말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목적만을 위해서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 수단과 도구의 질감 때문에 변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로 저지른 오류는 바로잡아야겠지만 의도적인 오류는 해석을 잘해야 한다. 오류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해석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저 느낌, 그리고 더 나아가 공감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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