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과 외국어
외교부에서 외교관들의 영어 능력을 걱정한다는 말이 놀랍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또 다른 소식 때문이다. 많은 국외 근무 공무원이 현지인과의 교류에 집중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오는 고위층의 의전과 접대에 무척 시달린다는 소문 말이다.
외국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오랜만에 출국하면 적어도 며칠은 혀가 굳어버리는 일을 자주 겪는다. 그만큼 외국어는 ‘일상화’되었을 때 윤이 난다. 하루라도 잡무에 정신을 팔고 나면 그만큼 현지어의 능숙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내 인사의 관광 안내에나 내몰리고 나면 어느 겨를에 현지 언어 수련을 제대로 해내겠는가.
우리가 길러낸 외교공무원은 그저 그런 시험으로 뽑힌 잔심부름꾼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또 진짜 고급스러운 외국어 능력은 어휘력이나 멋진 발음만이 아니라 풍부한 ‘교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능한 외교관은 교섭 능력 못지않게 현지 여론을 주도하는 교양 계층을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양은 스스로를 그 사회와 문화 속에 푹 담가서 숙성시켜야 겨우 제 노릇을 할 수 있다. 그제야 우리의 이익을 지켜줄 ‘소통망’에 접선된다.
이제는 산업 부문만이 4차 혁명을 맞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소통 능력과 방식도 또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그저 그런 평범한 외국어 능력은 곧 인공지능이 대리해줄 것이다. 더 풍부한 ‘수사법’, 만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이방인들과의 깊은 ‘유대감’ 등이 소통의 수준과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껏 길러놓은 전문가들의 능력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 없이 평소부터 잡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연마를 하게 했으면 한다. 우리의 전문가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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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전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부부 동반으로 백두산 정상을 거닐었다. 백두산에 깃든 전설 이야기도 나누었단다. 어느 지역에 가든지 산과 골짜기, 그리고 샘이나 동굴들은 대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자연환경은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백두산처럼 거대한 지리적 대상은 당연히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가운데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신화다. 백두산도 신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단군 신화다. 신화이니만큼 믿거나 말거나 한 부분이 적잖다. 모든 신화와 건국 설화는 팩트 체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우리가 아닌 또 다른 민족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중국의 구성 민족인 만주족이다. 그들의 옛 기록, <만주실록>에 따르면 하늘의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나서 막내가 까마귀가 갖다놓은 열매 씨를 먹고 임신해 아이를 낳았는데 만주인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부분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니 백두산을 우리와 중국이 공유하는 것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도 한다. 만주인들이 ‘골민 샹기얀 알린’(길고 하얀 산)이라고 일컫는 것을 한자로 직역한 것이다. 아무래도 높고 눈이 많이 쌓이는 하얀 산을 사람들은 신비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티베트의 설산이나 일본의 후지산이 주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프랑스말로 ‘몽블랑’, 이탈리아말로 ‘몬테비앙코’도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종종 백두산 정상을 우리가 독차지 못 하고 중국과 공유한 것을 가지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웃 민족과 다양한 전설을 공유하면서 함께 ‘영산’으로 품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타당하고 안보상으로도 더 이익이다. 역사와 문화는 독점하려 하면 할수록 더 고립되고 위험해진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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