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담론
북한과 미국이 연출하는 세기적인 만남의 자리 때문에 선거도 월드컵 경기도 관심에서 밀려난다고 푸념이다. 그러나 지나간 70년 동안의 냉전을 녹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마음 설렘을 지방 권력 재편이나 축구 열기가 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모든 과정이 순탄할지 혹시 또 삐걱대지나 않을지 조마조마한 면도 적지 않아 늘 텔레비전 뉴스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앞으로 북-미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 그 방향이 미국과 한국의 여러 정파나 이익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근근이 살아가는 남과 북의 서민 대중들이 입을 수 있는 혜택과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다양한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보도 매체의 임무일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대개의 보도는 주변적인 호기심, 또는 알아도 몰라도 그저 그런 주변적 담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측의 전용기가 싱가포르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북이 걱정할 문제이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니다. 또 호텔비를 누가 내는지도 회의의 핵심 내용과 동떨어진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같은 경호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마치 북측 정상의 신변이 유난히 예민하다는 듯이 촐싹거리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기울어진 선입관을 가지고 이 세기적 행사에 임하게 만드는 ‘선동’ 같아 보인다.
언론의 자유는 어떠한 신념이든지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넘쳐나는 쪼잔한 정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것이 그 본업이 아니다. 이런 것의 대부분은 허접한 과잉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보도 매체는 시시한 정보를 치워 버리고 중요한 알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다함으로써 이 중요한 시대의 행사를 감당해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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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
남에게서 덕담을 들으면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덕담은 외교적이고 사교적인 대화에서 쓰이는 말이다.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거나 대화 상대방과 매끄러운 관계를 다듬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회 활동의 윤활유인 셈이다.
덕담이 성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소망, 욕망, 목표에 부합하는 덕담을 해야 한다. 당사자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나 꺼림칙해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라고 말해서는 덕담이라고 하기 어렵다. 기업인한테는 사업의 성공을 빌고 정치가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축원해주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덕담이다.
그다음 조건으로, 덕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덕담은 약간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경우에 따라 약간의 과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한이나 영향력이 필요한 내용은 덕담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가 생긴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인사 대상에게 “이번 기회에 꼭 진급하세요”라고 말했다면 그 누가 그것을 덕담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마 누구든지 ‘거래 의사’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법원장이란 사법부의 수장이다. 견제해야 할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에게 ‘재판’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덕담이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히 ‘언어 오용’이다. 더구나 행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사항을 곁들여 ‘판결’에 관한 언급을 한 것은 누가 보든지 미끼를 던진 것이고 ‘거래’를 위한 바람잡이 구실을 한 것이다. 덕담의 조건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법관은 ‘법률의 언어’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다듬어주는 전문가이다. 그들이 언어를 오용했다는 것은 법을 오용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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