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생각
사람이 살면서 가장 오래 정을 나누는 사람이 누굴까? 아마 살아온 역정에 따라 누구는 배우자, 누구는 형제자매, 또 더 나아가 친구를 꼽을 수도 있겠다. 배우자와 형제자매는 일단 관계가 맺어지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반면에 친구는 얼마든지 관계가 끊어질 수가 있다. 그럼에도 오래가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다.
친구에 해당하는 말로는 또 ‘벗’, ‘동무’가 있다. 보통 ‘친구’라고 하면 엇비슷한 연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주 정 깊은 관계부터 시작하여 대충 이름 석 자 알고 지내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어서 가장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벗’이라 하면 비슷한 연배가 아니어도 함께 즐기는 대상이 있거나, 관심사가 같을 때 사용하기 좋은 말이다. 또 난초나 예술품 등 특정한 사물을 벗삼아 지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말벗, 술벗, 일벗, 마음의 벗’처럼 심리적으로 가깝고 편안한 관계를 나타낸다.
‘동무’라고 하면 또 다른 면을 가리킨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았던 길동무, 글동무, 말동무, 소꿉동무, 어깨동무처럼 오랜 동안의 공동 활동을 통해 형성된 친근한 관계에 사용한다. 그래서 같이 놀아야 동무가 된다. 친구나 벗, 동무의 공통점은 ‘이해관계’를 넘어선 관계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광범위한 의미, 심리적인 가까움, 공동의 활동과의 연계 등의 요인에 따라 말을 달리한다.
친구도, 벗도, 동무도 우리의 삶을 매우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오래된 관계일수록 하루하루를 마치 묵은지처럼, 시래기처럼 종종 맵짜게, 종종 걸쭉하게 만들어주며 세상의 제도와 법도를 넘어서는 편안함을 가져온다. 그가 나에게 친구이면 당연히 나도 그에게 친구이다. 벗이며 동무가 또한 그러하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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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외교
한때 남과 북의 외교는 유엔에서 지지 국가 수를 늘리는 경쟁에 매몰되기도 했다. 또 강대국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동족끼리 손가락질하는 유치한 입씨름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올해 들어 벌어진 남과 북의 외교 활동은 시대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손발 맞춰 처리해 나간 적이 언제였던가?
미국 방문 1박4일, 순식간의 판문점 나들이, 이런 식으로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숨 가쁜 활동을 언론에서는 ‘셔틀외교’라고 했다. 왕복외교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마치 별생각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심부름꾼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 청소년 사이에서 사용되는 좋지 않은 통속어 가운데도 ‘셔틀’이란 말이 있어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통속어 ‘셔틀’은 힘이 약한 아이한테 궂은 심부름을 뒤집어씌우는 짓을 말한다. ‘담배 셔틀, 빵 셔틀, 가방 셔틀’ 등 약자를 괴롭히는 못된 짓들을 가리킨다. 이런 ‘셔틀’이란 말보다는 다른 좋은 말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
오래된 마을에서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사교 활동’을 하는 것을 ‘마실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서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하고 집집이 돌아가는 여러 가지 사연과 곡절을 귀동냥하며 ‘공동체’적인 소통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뻔히 알게 되며, 이런 소통과 정보를 바탕으로 마을의 협업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 따지고 보면 국가 간의 외교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외교를 하면서 아슬아슬한 ‘벼랑 끝 외교’나 불안한 ‘말폭탄 외교’를 일삼는 것도 소모적인 짓이다. 그런가 하면 그저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거창한 국빈 외교도 얼마나 허망했던가? 이제는 더욱 실속 있는 마실 외교를 통해 국가 간의 소통을 유지하며 서로 이익을 나누는 품격 있는 국제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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