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상거래
시장에서 상인은 고객을 끌려고 소리 높여 상품을 ‘선전’한다. 그리고 또 말로 씨름하며 ‘흥정’을 한다. 옥신각신하다가 ‘협상’에 성공하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종종 중간에 중개상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래서 시장은 늘 말로 소란하고 시끄러웠다. 이런 시장을 단숨에 조용하게 만든 것은 ‘정찰제’였다. 고객은 살지 말지를 조용히 결정만 하는 피동적인 처지가 되었다.
말을 안 한다 해도 조금씩 말하는 틈새가 생겼다. 계산대에서 포인트가 있냐는 둥, 회원 카드가 있냐는 둥 하며 자잘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점원과 잡담을 나누는 단골도 생겼다. 또 틈틈이 ‘행사’를 기획하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작은 시끄러움마저 날려버린 것이 바로 ‘자판기’이다. 인간의 상업 활동이 이렇게까지 비언어적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고객은 더욱 소외되어갔다.
한술 더 떠 이제는 ‘언택트’라는 용어도 나타났다. 점원이 고객한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을 삼가는 서비스를 말한다. 마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기특한 생각 때문이란다. 일인 가구 시대의 특이한 현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고객의 언어는 점점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언어로 화려한 수사와 형용을 하게 만들던 ‘상업’이 너무 점잖아진 것이다.
고객들은 어느새 광고와 전자 거래, 직구, 택배 등의 포위망에 갇혀 말을 잃고 있다. 이제 고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시장의 선전과 광고만이 요란하다. 현대의 고객들은 자신의 큰 무기였던 ‘흥정’을 어느 결에 잊었다. 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스스로 힘을 잃게 된다. 고객들도 보장된 언어적 권리를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 상품 정보, 반품 조건, 유효 기간 등을 꼼꼼하고 치열하게 따지지 않으면 시장에서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시장에서는 언어가 돈보다 더 중요한 무기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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