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
이 세상에는 기계를 다루거나 돈을 만지는 직업들도 많지만 ‘말’을 다루는 직업도 매우 많다. 말의 기능이 워낙에 다종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와 종교가 언어 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과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작가와 언론매체 종사자들은 말을 다루거나, 말을 사용하거나, 말에 대해 고민하거나 하는 등, 한시도 말과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직종에 속한다.
독재 권력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선전과 홍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와글거리는 말, 곧 ‘의견’과 ‘질문’은 질색한다. 그래서인지 과거 독재 정부 때는 똑 부러진 말을 많이 하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수난’을 많이 당했다. 정치적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교육자들과 법조인들이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사에 끊임없이 ‘쟁점’을 찾아 정당함과 부당함을 논하려 했다. 역시 권력자들은 이들을 멀리하려 했다.
실무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말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와 언론인들이다. 이들에게 말이나 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한 숟가락의 밥도, 한 모금의 물도 허락하지 않는 폭력이다. 그동안 작가들에게는 권력에 의해 블랙리스트가 덧씌워졌으며, 대통령은 기자들을 기피했고, 방송 종사자들에게는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마이크를 빼앗기는 인사조치가 행해졌었다.
작가들의 글 쓸 권리를 방해한 블랙리스트 문제는 ‘재판’으로 결말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방송사의 문제는 ‘파업’으로 승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말과 글에 대한 권리를 ‘재판과 파업’으로 결말을 짓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말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서 승리했을 때 획득하게 될 권리는 곧 우리의 언어 사용권에 대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가 될 것이다. 자고로 허락받아 얻은 권리와 승리해 얻은 권리는 그 근본이 다른 법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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