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언장담
호기롭고 자신 있게 하는 말을 호언장담이라고 한다. 매사에 호언장담을 잘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볼 때 부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직자들이 그런 말을 쏟아내면 오히려 불안감이 들 때가 더 많다. 특히 정보를 독점한 사람들의 호언장담은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심란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가장 유명한 호언장담은 6·25 전쟁 직전에 당시 우리의 군 수뇌부 인사의 발언이었다. “(남과 북이 전쟁을 벌이게 되면) 아침은 개성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엄청난 ‘뻥’을 터뜨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터진 전쟁에서는 도대체 어떤 판이 벌어졌는가? 전선의 붕괴는 이렇게 무능한 지휘부의 망상과 허위의식이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의 핵무장이나 미사일 실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충돌의 가능성이나 우리 측 무장의 열세가 아니라 안보 관계자들의 지나친 호언장담일 때가 더 많다. 몇 해 전부터 북에서 도발적인 일을 벌일 때마다 무슨 ‘참수’ 작전이니 지하 벙커를 박살낼 수 있는 무기니 하는 호언장담을 얼마나 자주 했는가?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 나서 진짜로 괌섬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받으니 이제 와서야 그게 가능하겠냐는 둥, 그럴 리가 없다는 둥 하며 은근히 꽁무니를 빼고 있다.
자고로 믿음직한 장수는 입을 그리 가볍게 놀리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말을 아끼며 적이 외통수에 걸려들기만을 끈질기게 기다릴 뿐이다. 가볍게 입을 놀리는 짓은 사실 잔뜩 겁먹은 졸장부들의 불안감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 진용을 갖춘 안보 관계자들은 부디 호들갑스럽지 않게 안보 체계를 다듬어 나갔으면 한다. 그리고 안보에 대한 보도 역시 좀 더 진중했으면 좋겠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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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구분
‘인종’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종류를 구분해 보려고 만든 단어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완전히 ‘실패한 어휘’이다. 사람을 제대로 분류해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숱한 혐오감과 고정관념을 만들어내어 많은 갈등과 분쟁의 씨앗만 뿌렸다. 그 판단 기준도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르다.
어떤 한국 여성이 독일 남성과 결혼하여 아기를 낳았다. 어머니 쪽 친척들은 그 아기의 눈이 푸른색인 것을 보고는 꼭 아빠를 닮았다고들 했다. 반면에 아빠 쪽 친척들은 아기의 광대뼈가 살짝 올라온 것을 보고는 엄마를 고대로 닮았다고들 했다. 서로 다른 부분을 결정적인 요소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머지않아 겨울올림픽도 열린다고 하니 미리부터 걱정되는 바가 있다. 아마 훌륭한 기량을 보여서 메달을 딴 선수가 유럽계 여성일 경우에는 틀림없이 ‘푸른 눈의 미녀 선수’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다. 종종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유럽계 수녀들한테도 ‘푸른 눈의 천사’라는 표현이 나타나곤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푸른 눈’이 ‘미인’이나 ‘천사’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이번 겨울올림픽에는 유난히도 한국 대표팀에 귀화 선수들이 많다. 따라서 언론 보도나 중계방송에서 예민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황당한 표현이 나올 가능성이 퍽 많다. 또 일부는 해외로 이주했던 이들의 자녀가 다시 고국에 귀화해서 출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뜨거운 국수주의적 표현이 난무하는 곳이 경기장인데 무슨 말실수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피부색과 눈의 빛깔은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데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오로지 그런 말을 한 사람의 편견과 무지만 드러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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