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선한 것이 경쟁력이다 - 도덕 경영
IMF, 막고 품어라
언젠가 나는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영국의 성 어거스틴 목사에 대해들은 적이 있다. 런던 근교에서 성 어거스틴 목사가 부흥회를 했다고 한다. 설교를 마치자 마자 한 부인이 그에게 질문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72시간,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사흘 동안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성 어거스틴 목사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수첩 속에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습니다. 몇 시부터 누구를 만나고, 또 몇 시에는 심방을 가고, 몇 시에는 밥을 먹고, 몇 시에는 잠을 자고 하는 평범한 스케줄이지요. 제가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 수첩에 적힌 그대로 할 것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항상 오늘에 충실하고 자기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복음이다. 경제사정이 악화되었다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몸을 사리는 기업들이 요즘 참 많다. 그저 아끼고, 미루고, 없애고, 참는 소극적 방식들만 횡행하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는 IMF를 극복할 수 없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대응방식들이 필요하다. 권투에서는 '최대의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말을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장과 발전을 꿈꿔야 한다. 도약의 불씨를 꺼뜨릴 것이 아니라 더 보살피고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의 해직바람이 나는 더 못마땅하다. 자르기보다는 오히려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워낙에 말도 안 되는 경제상황이다 보니, 회사마다 각각의 사장과 이유들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면 머릿수라도 줄여야지 별 수 있겠는가. 다만 너무 과격하고 대책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이 또 어느 정도는 필연 아닌 유행의 성격마저 띠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요때다 싶어, 사람수 줄이고 업무강도를 높이거나, 명분도 없이 다짜고짜 임금 낮추고, 직원들이 항의하면 무조건 고통분담이니 IMF니 들먹이는 기업가들은 정말 없는지 솔직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조금 힘들다고 평생을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을 함부로 내친다면, 남아 있는 어떤 직원이 그 회사와 사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조금만 긴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들이 요즘 들어 특히 아쉽다.
기업이 '도약의 불씨'를 지키고 키우는 방법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더 열심히 기술개발하고 더 열심히 인재를 키워내는 것뿐이다. 침체를 침체로 맞서는 것은 우울한 미래를 약속하지만, 침체를 열정으로 맞서는 것은 희망적인 미래를 약속한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곧 '오늘을 열정적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또한 '오늘을 열정적으로 산다'는 말은 '미래를 창조한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얼마 전 TV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내가 그것을 보면서 놀란 것은, 사냥개들이 호랑이에게 용맹하게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냥개가 호랑이에게 저토록 공세적일 수 있는 것은 뒤에 총을 든 사냥꾼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사냥꾼이 없는 사냥개는 호랑이의 밥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IMF 시대의 기업들이 이 사냥꾼 없는 사냥개 신세라고 생각한다. 기대고 의지할 응원군은 더이상 없다. 오로지 홀로 호랑이와 싸워야 하고 버텨야 한다. 사냥꾼 없이 혼자 싸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 몸을 사릴 때가 아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오늘에 발을 딛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덤벼야 IMF는 극복될 수 있다.
전라도 사투리로 '막고 품어라'라는 말이 있다.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아예 물길을 막고 바닥이 보이도록 물을 퍼낸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의 IMF도 기회라면 기회다. 이럴 때,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의 도움 없이도 기업 자체의 능력과 판단만으로 세계 속에서 올곧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로 거듭나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자, 원가절감에 사력을 다하자 등등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결코 IMF를 극복할 수 없다. 막고 품어라. 요때다 싶어, 사람수 줄이고 업무강도를 높이거나, 명분도 없이 다짜고짜 임금 낮추고, 직원들이 정말 없는지 솔직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곧 '오늘을 열정적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또한 '오늘을 열정적으로 산다'는 말은 '미래를 창조한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막고 품어라'라는 말이 있다.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아예 물길을 막고 바닥이 보이도록 물을 퍼낸다는 뜻이다.
내 인감 좀 빌려주게
미래산업이 97년도 최우량 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 나는 눈시울을 적셨다. 외도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던 미래산업이 결국은 옳았다는 의미였다. 정치 판에 추파를 던지거나 특혜융자 혹은 부동산투기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나가는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우리들의 신념이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도덕 경영이란 말을 그리 어렵게 생가하지 않는다. 기업이 기업답지 않은 일을 할 때 부도덕해지는 것이고, 기업이 가장 기업다운 일을 할 대 가장 도덕적이 되는 것이다. 기술 개발해서 제품 생산하고, 제품 판매해서 직원복지와 또 다른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기업다운 기업의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신이다. 직원이 사장을 믿지 못하고, 사장이 직원을 믿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직원은 서로간에 믿지 못하고 국민은 기업을 믿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불신 때문에 기업들이 무너진다. 기업이 가장 기업다운 일을 할 때 숨길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도덕 경영, 신뢰 경영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자판기 커피를 하도 좋아하다 보니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여직원이 커피를 뽑아다 준다. 항상 그러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 여직원에게 생각날 때마다 만 원이든 이만 원이든 챙겨서 준다. 처음에 그 여직원은 한사코 사양했지만 내 의도를 설명하고부터는 고맙게 받아간다. 커피자판기는 여직원회에서 운영하고 그 수익금은 공동기금으로 활용된다. 200원이든 200억 원이든 공금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나는 단 한 푼도 회사돈을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 내가 회사로부터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월급뿐이다. 회사돈은 철저하게 기술개발과 직원복지에 쓰인다. 로비를 하지 않으니 비밀장부 같은 것도 없다. 탈세하는 재주도 없다. 너무나 간단해서 쉬쉬할 것도 없다. 그러니 피차간에 의심할 건덕지가 없다. 서로 마음놓고 믿을 수가 있게 된다.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라'고 말해도 기실 그 규모가 대수롭지 않다. 사전결재만 받지 않을 뿐, 적절한 지출규모에 '다라는 대로 주라'는 배짱도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는 인감이 없다. 내 인감은 경리과 대리가 가지고 있다. 내 집문서도 대리가 가지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맡겨두었던 것을 어쩌다 보니 아직도 찾아가지 못했다. 경리과에는 인감대장 같은 것도 없다. 내 인감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알 수 없지만,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한번은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인감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다.
"별일 없으면 내 인감 좀 하루만 빌려주시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우스웠다. 경리과 직원들과 나는 한참이나 같이 웃었다. 어이없는 실언 때문이기도 했지만, 철저한 믿음에 대한 감격의 웃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신이다. 직원이 사장을 믿지 못하고, 사장이 직원을 믿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직원은 서로간에 믿지 못하고 국민은 기업을 믿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불신 때문에 기업들이 무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