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의 된소리
한때 국민 점심 ‘짜장면’의 바른 표기가 ‘자장면’이었던 적이 있었다.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외래어 표기에 된소리를 안 쓰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둘 다 인정을 받는다. 다행히 ‘짬뽕’과 ‘껌’은 굳어진 관행으로 인정을 받아서 굳이 ‘잠봉’이나 ‘검’으로 적을 필요가 없었다. ‘짬뽕하다’라든지 ‘껌값’ 등의 파생어가 생겨서 이미 손을 쓸 수도 없었다.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는 사실 외래어를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외래어 표기 규범과 충돌된다. 자연히, 표기할 때는 부드러운 예사소리로, 발음할 때는 익숙한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글 쓸 때는 ‘버스, 가스’, 말할 때는 ‘[뻐스], [까스]’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독한 ‘빼갈’ 마실 때는 된소리로 말하고, 사전을 찾을 때는 ‘배갈’을 찾아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아예 예사소리로 발음하면 의미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뒷배가 든든한 사람을 가리켜 ‘빽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백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냥 멍해진다. 자동차 타이어가 터지거나 미리 잡은 일정이 취소됐을 때 또 낙제 학점이 나왔을 때, [빵꾸]가 났다고들 하는데, 길거리의 정비공장에는 ‘빵구’라고 씌어 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신문 기사에는 대개 ‘펑크’라고 표기된다. 세 가지의 변이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통속적으로 사용되는 외래어를 엄격한 표기 규범의 틀 안에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애를 쓰면 쓸수록 규정의 이상과 언어의 현실 사이의 틈만 벌어진다. 이렇게 통속적 경로로 들어온 외래어는 규정에 ‘관습적 형태’라고 해서 따로 인정해주는 편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표준어 관리자도, 언어 사용자들도 편해진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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