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과 고백
자백이란 말과 고백이란 말은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한자도 들어 있고 하니까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곱씹어보면 그 차이는 크고도 크다. 사용자의 태도와 심성, 사용되는 언어의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자백’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조금이라도 더 숨기거나 줄여보려고 한다. 죗값이 가벼운 쪽으로 저울질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백을 요긴하게 이용하려면 잘못의 주체를 ‘타인’으로 삼고 적당히 둘러대야 ‘법적’으로는 조금이나마 유리해진다. 신문을 당하며 조금만 살짝 자백하고 더 추궁당하면 또 찔끔 자백하고, 요리 빼고 조리 빼고 하면서, 신문자와 씨름을 하게 된다. 신문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분노를 느끼게 된다. 자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추해진다.
자백이 아닌 ‘고백’은 신문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다 털어놓는 것이다. 그 안에는 자기 잘못도 들어 있으며 또한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뉘우침이 담겨 있다. 고백의 주체는 오로지 ‘나’이다. 그러니 고백에는 핑계와 둘러대기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한 행위와 심정을 적은 고백문학이 값진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맑아진다. 비록 윤리적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많은 가르침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자백이 아닌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에 마땅히 뒤따라야 할 올바른 후속 행위이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뎌가며 사는 이들에게 이렇게 정치적 불안정을 오래 강요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과 국민 양쪽에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을 불러온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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