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정신
민주주의 체제에 위기를 느끼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정치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국호인 ‘대한민국’의 ‘민국’이란 말은 공화국을 일컫는다. 기원전 842년 중국 주나라의 여왕이라는 사람은 폭정을 일삼다가 쫓겨난다. 그래서 13년 동안이나 ‘왕이 없는’ 정권이 생겨났었다. 그 기간에 신하들이 함께 어울려 정치를 했다는 뜻으로 ‘공화’라고 한다. 이 말을 근대 전환기에 유럽의 ‘공화제’를 번역하는 데에 이용하여 지금의 공화국 같은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국호에 ‘공화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민국’이란 말을 붙이는 나라는 우리와 중화민국(대만)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공화국이라 한다. 그나마 우리는 중화민국을 승인도 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만 좀 낡은 국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제대로 된 공화제 정치를 맛본 일이 없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함께 어울려 하는 정치’는 현실 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주 정치라는 것이 거의 아귀다툼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정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꿈과 낭만을 성취해 가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공화라는 말의 기원은 통치자의 부재에서 비롯했으나 앞으로의 공화제는 통치자의 개념보다는 좀 더 ‘화합 정치’ 쪽으로 무게의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민주제도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막강한 통치자의 능력보다는 손발을 잘 맞추는 유능한 직업 정치인들에게 의존한다. 황제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를 두고 어찌 그것을 공화제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는 권위주의를 벗어나 좀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각성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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