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명칭
사물의 이름은 그리 객관적으로 혹은 중립적으로 지어지지는 않는다. 주로 명명자의 관심사나 희망사항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이름이 정치적인 성격을 띨수록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진다. 정치야말로 자신이 품고 있는 가치와 열망을 극대화시켜 그에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정치적인 일에도 만민의 생각을 담은 상식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니 1980년대에 한국 정치를 휘두르며 숱한 정치적 희생자를 만들어냈던 집단은 스스로를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정당이라는 이름을 ‘감히’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이른바 ‘유신’ 체제는 그 이름에 걸맞은 변혁과 혁신의 기능을 했느냐는 물음에 많은 이들이 도리질하게 된다. 말뜻만으로는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울적한 그늘만 만들었던 이름들이다. 곧 상식과 맞지 않았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크게 다쳐 오랜 입원 끝에 죽음에 이른 한 사람의 죽음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로 말다툼이 치열하다. 의학적인 판단 못지않게 상식적이고 예의에 맞는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면 그 죽음을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오로지 생리적인 신체 내부의 현상으로만 본다면 사회적 책임을 단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상식’에 맞는 명명인가?
대학생 박종철군은 외부적인 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는가, 아니면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떠났는가? 이에 대해 상식적으로 대답을 해보자. 그리고 고 백남기씨의 문제를 정직하게 생각해보자. 올바른 이름은 그렇게 정해야 한다. 왜 이리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마치 현재 일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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