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과 못할 말
문법에 맞는다고 모든 말을 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차마’ 못할 말들이 있다. 내뱉을 때는 후련하겠지만 그 후환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보도매체들은 감성이 담겨 있는 말들을 적절히 순화해 발표하거나 전달할 필요가 있다.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도 위협도 했건만 북한은 또 핵실험을 했다. 충분히 예측되는 격앙된 반응들이 나왔다. 흥분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반응은 댓글이나 길거리 시민들의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럴 때 공공기관과 보도매체들은 대중의 흥분을 토닥이는 것이 더 옳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일반 대중이 판세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침착한 대응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불을 지르고 다니는 형국이다.
그러는 중에 가관은 무슨 ‘참수 작전’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기사를 잘 읽어보면 누가 그런 발언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당국 같기도 하고 어느 공직자의 스치는 듯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 매체들은 그것을 거르지 않고 아예 제목으로 뽑아 쓰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중동에 갔던 어느 청년이 그곳 테러단체에 잡혀 그런 방식으로 살해당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놀랐던가?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방식의 일 처리를 끔찍해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런 내용을 먼저 언론에 털어놓은 것 자체가 실제의 작전이 아닌 말폭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작전이 있다면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지 이렇게 말을 거르지 않고 마구 해대는 것은 알아서 피하라는 말이거나 내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고충을 이해해 달라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분단 70년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리게 한 것 같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