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한국말
누구든지 한국말은 한국말다워야 한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말이 외국어다우면 어떨까? 우리 언어를 더 멋있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망가뜨리는 일일까? 현실에서는 한국말을 마치 외국어인 듯이, 혹은 외국어가 우연히 한국어처럼 들리는 듯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와인의 이름은 ‘마주 앉았다’는 의미를 풍기는, 그러나 듣기에 따라 외국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국세청에서 외국어로 지은 술 이름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외래어 상표명이 인기를 누리는 상품은 주로 화장품, 음식, 패션, 건강용품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들이’라는 말을 풀어적은 형태, ‘보드랍게’를 변형시킨 이름, ‘참 좋은’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주로 미용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또 ‘아리따움’을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마치 라틴어인 듯이, 또 달리 보면 한국어인 듯이 지은 점포명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파트 이름마저 한국어의 ‘푸르지요’인 듯이, 아니면 마치 이탈리아에서 온 말인 듯이 사용되기도 한다.
외국어식 위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영어의 정관사인 더(the)와 한국어의 비교급을 나타내는 부사인 ‘더’가 중첩된 듯한 표현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어의 부사 같고 또 달리 보면 영어의 정관사 같다. 영어의 ‘더(the)’는 명사의 앞에 붙고, 한국어의 ‘더’는 형용사 혹은 형용사적인 명사 앞에 붙게 되어 있다. 별개의 문법 구조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는 혹시 온갖 명사 앞에 무조건 정관사만 붙이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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