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추억
말의 원래 뜻은 전혀 다르지만 그 기능과 쓰임새가 같아서 비유 혹은 유추를 통해 유의어나 동의어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전혀 다른 의미의 ‘국가’와 ‘가족’을 유의어처럼 쓰거나 ‘하나님’과 ‘아버지’를 같은 반열로 유추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요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복합적인 사건들이 생기니까 정부는 시끄러운 논란을 피하자는 뜻에서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남북 긴장 상태에 ‘남남갈등’만 도드라진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인식에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있다.
중세 독일에서는 ‘부르크프리덴’(Burgfrieden)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보통 ‘성내평화’라고 번역한다. 적과 대치할 땐 사적인 다툼, 결투, 분규를 금한 것이다. 공동체의 당연한 규범이기도 하지만 악용도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황제는 러시아에 선전포고하면서 바로 이 전통에 근거하여 다수당인 야당이 반대하지 못하게 성내평화를 주장했다. 원래 전쟁을 반대했던 야당, 사회민주당은 그 논리에 넘어가 전쟁에 협조했다. 자신의 강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의를, 러시아가 민중을 탄압한다는 빌미로, 또 황제의 성내평화라는 미끼를 물고,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패전을 했다.
이 ‘성내평화’라는 단어는 1970년대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라는 말을 유추하게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논쟁과 쟁점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 당시 정부와 여당의 요구였다.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그 정략적 유용함은 독일의 황제에게나 한국의 독재자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때는 공동의 이해관계일지라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다툴 수도 있다. 그럴수록 서로의 쟁점을 좁혀가는 언어적 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신의 추억이 아니라 유신의 교훈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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