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힘
우리는 서울말에다가 ‘표준’이라는 큰 권위를 실어준 반면, 나머지 여러 지역 방언들은 그냥 알아서 살아남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은 지역 사람들의 애환과 정서를 담아가면서 언어 생태계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 버리기도 했고 들풀처럼 뻗어나가기도 했다.
방언은 종종 특이한 어휘를 표준어에 보태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낱낱의 단어가 아닌 옹근 문장이 통째로 널리 쓰이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그 문장 속에 탁월한 표현력, 촌철살인의 재치나 유용함이 깃들어 있을 때의 일이다.
한때 대통령 선거에 나돌았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의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었다. 그 쓰임이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이처럼 마음을 울렁이며 사람을 뭉치게 만드는 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또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은 아무리 애써도 되풀이되어 일어나는 액운이나 불행 앞에서 느껴지는 망연자실함에 공감하게 한다. 이러한 말들을 각각 “우리가 남인가?”라든지 “어째 이런 일이!”라고 서울말로 ‘번역’해서는 도저히 그 말맛을 옮기지 못한다.
요즘 한 영화에서 비롯한 “뭣이 중헌디?”라는 말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살피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한번 주위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 말도 “뭐가 중요한데?”라고 번역을 해서는 그 깊은 뜻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쳇바퀴 돌리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말, 그건 기성품 같은 표준어보다는 생태계에서 풍부한 정서를 주워 담아온 방언이 제격이다. 자잘한 낱말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문장으로, 뼈 있는 표현을 던져줌으로써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방언의 또 다른 힘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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