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한다면
우리의 헌법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문화에 대해서 겨우 한 조항(9조), 교육에 대해서도 겨우 한 조항(31조), 그러고는 나머지 대부분이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헌법 자체의 성격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북한의 헌법에는 문화와 교육 부문에 무려 20개 가까운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한동안 정치권에서 개헌 이야기가 들리더니 또 조용해진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놓으면 보나마나 또 권력 문제만 논의할 것이다. 이럴 때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의 생각도 한번 모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단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한 가지씩 꿈을 이야기해 보자. (새) 헌법에 언어에 대한 조항을 마련한다면 무엇을 넣는 게 좋을까?
아마도 욕설을 금지하자는 둥, 표준어를 더욱더 강화하자는 둥, 또는 외래어를 못 쓰게 하고 순수한 우리 어휘를 살리도록 하자는 둥 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악용함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으로 망가지게 되는 그 밑뿌리에는 분명히 공직자들이 하는 거짓말이나 오리발 내밀기, 또 더 나아가 유체이탈식 표현과 허위 선거 공약들이 둥지 틀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인들의 언어를 믿고 지지를 해 주었으나 결국은 배신당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릇된 언어 사용을 문제 삼아 형벌을 준다는 것은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아닌 공직자들의 언어 왜곡은 아무리 보아도 다수를 향한 절도나 사기와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신뢰에 가장 치명적 상처를 내고 있다. 언어를 그릇되게 쓴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고 벌할 수 있는 무언가의 근거가 헌법에 명시된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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