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의 길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정치의 문제인 동시에 언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선진화’라는 말이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기업이나 대학을 선진화하자는 말에 누구든지 일단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우리 사회의 온갖 제도에 불완전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널리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이란 말이 더 앞서 나아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그것을 마다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선진인가 하는 것은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면 무슨 호박이 저절로 굴러떨어지는 낙원처럼 생각하겠지만 선진 사회라는 게 뭐 별거 있겠는가. 남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해결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요즈음에 벌어지는 선진화라는 구호의 문제점은 아무 개념 없이 ‘선진’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경영의 선진화, 국방의 선진화, 공기업의 선진화, 의료 선진화 등 거의 모든 주요 과제들을 얼토당토않을 정도로 선진화라는 하나의 개념에다가 꿰어 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루어낸 가장 그럴듯한 작품이 바로 속칭 ‘국회선진화법’이 아닌가 한다. 다수당이 횡포를 부리기 어렵게, 그리고 되도록 여당과 야당이 협력하게 만든 작품이다. 또 지난번에 목격했듯이 무제한 발언도 가능하게 만든 법이기도 하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도 강화했다. 효율성보다는 협력적인 의회제도를 강화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 법에 대해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불만이 있는 모양이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협치’와 ‘민주주의’가 공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제에 의회제도의 모순 하나를 이렇게 우리 손으로 풀어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법으로 진정 의미 있는 선진화된 사회에 먼저 도달했으면 한다. 선진국은 이러면서 달성되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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