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언어
기대 수명이 날로 늘어나면서 장수보다 건강 수명에 관심을 가지는 시대이다. 보건, 복지, 의료 등이 주로 고령화 문제로 고민하고 교육, 경제 등에도 새로운 과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어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띈다.
노인들이 말 때문에 불편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공 기관에 가도 안내하는 ‘젊은 분’들의 말이 너무 빠르다. 미안하게도 자꾸 되묻게 된다. 특히 거대한 종합병원 같은 곳에서는 늘 어리둥절하게 마련이다. 날이 갈수록 ‘주변화’되고 있다는 느낌, 바로 그것이 노인들의 소외감일 것이다. 그러다가 동네 병원에 가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톱니바퀴처럼 숨쉴 겨를도 없는 조직 체계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마음 편한 환경을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는 신조어나 특이한 약어에도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새로운 외래어가 지독히 낯선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그런 언어를 탓하기도 쉽지는 않다. 노인의 언어가 ‘고령자방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대간의 소통 장애’는 다가온 것이다.
나이든 세대의 언어를 젊은 세대가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됐던 시기는 이미 저물었다. 노인의 말은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노인들이 젊은 언어를 배울 기회는 없다. 세대간 소통 장애는 저절로 해소되지 않는다. 방치하면 점점 더 벌어진다. 늙어도 또 배울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젊은이들의 새로운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그들의 의견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도 있는, 또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왜 매사에 이러저러한 반응만 보이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지속가능한 소통 체계’에 대해 더 늦기 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들도 점점 늙어간다. 사실 ‘살아간다’는 말과 ‘죽어간다’는 말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반대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의미는 똑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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