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막말
언제부턴지 우리 정치판에서 ‘막말’이라는, 개념이 불투명한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저급한 표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시퍼렇게 날이 선 비판적인 표현에도 똑같은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냉정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활동이기도 하면서 사회집단의 의견과 마음을 ‘대변’하는 기능도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피해를 본 억울한 집단을 대변하려 한다면 그 어찌 곱고 단정한 어휘로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국가기관을 비판하거나 책임자를 추궁하는 일에 어찌 무미건조한 어휘로 그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려면 풍자, 비유, 조소 등에 매우 능해야 하고, 강자에 대한 도전 의식과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필수적이다. 또 비판적인 언어는 주어진 판세 자체를 흔드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얌전한 말만 골라 쓰자고 강요한다면 기존 판세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들이 또 덕을 보게 된다. 새로운 판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매우 강하게, 맵게, 매몰차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누군가의 편을 드는 셈이다. 더구나 개념이 불분명하면 정치적 약자 아무한테나 뒤집어씌우기도 딱 좋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책임은 언론 매체에 있다. 따라서 목청을 높여 누가 막말을 했다고 요란을 떨기보다는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예리하고 차분하게 보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이 그 ‘맥락’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다음의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보도 매체가 스스로 정치하려고 나서니까 불분명한 개념으로 우리의 정치가, 정치인들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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