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그 한마디
연말이 되면 경기가 좋든 나쁘든, 또 호주머니 사정이 어떻건, 촘촘한 송년회 일정으로 바쁘면서도 들뜬다. 오랜만에 탁자에 둘러앉아 잔을 나누게 되면 잔을 부딪치며 ‘한마디’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딱 그 한마디’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작정 ‘브라보’였는데, 언젠가 ‘위하여’가 대세를 이루다가 최근에는 그것도 좀 시시해진 모양이다.
건배사만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겐가 진정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짤막하게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축하한다고만 할까, 아니면 부럽다고 해야 할까, 우리의 말이 퍽 마땅찮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또 궂은일에 대해서 위로를 해야 할 때도 도대체 뭐라고 해야 인사도 되고, 격려가 될지 퍽 막막하다. 누구한테든지 공감되는 말을 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공적인 관계인지 사적인 관계인지에 따라 무언가 빛다른 표현을 하고 싶어도 대개 어중간한 말 몇 마디에 나머지는 표정으로 대충 메우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표준어를 결정할 때 어휘의 기준만 겨우 설정됐지, 적절한 사용법의 기준은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모임에 가서도 첫인사를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도로 대충 때우고 있다. 이 얼마나 껄렁한 언어문화인가? 이러한 ‘경우에 맞는 말’들은 대단한 지식인이 제안해서 표준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광범위한 시민사회 속에서 형성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유대’ 속에서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도 안 좋다고 하고, 당장 내년의 삶도 불안하지만 어려운 세상에 남들과 서로 공감 어린 말을 나눈다는 것도 중요한 삶의 에너지이다. 가까운 이들과 공감대를 두텁게 쌓아가는 진심이 깃든 ‘딱 그 한마디’를 찾아두는 소박한 지혜가 필요하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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