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다르게 끈질기게 파고들어라 - 시추 경영
포도밭의 철학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을 재능이나 기질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뛰어난 엔지니어들은 잔머리를 굴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처럼 순수하고 주어진 일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무척이나 성실하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만 믿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가벼운 삶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싫어한다. 언젠가 백정규 부사장과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자네 처음 봤을 때 좀 실망했네. 사람이 영 히마리가 있어 뵈야지."
"그랬습니까."
"대학교수한테 부탁했으니 당연히 멋진 엘리트를 하나 보내주려나 보다 했지."
"공고출신이라 실망하셨겠군요."
"그래도 나는 자네가 진실 되고 성실한 사람이 어서 좋아하네."
백정규 부사장은 나의 분신과 같은 사람이다. 항상 내 곁에서 나의 부족함을 말없이 보완해주는 이등참모였을 뿐더러,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총괄하고 지도하는 최고의 엔지니어였다. 백정규는 내가 사람을 판단해야 할 때마다 늘상 떠올리는 바로미터다.
타고난 재능과 모험적 기질이 제대로 발휘도기 위해서는 진실과 성실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정의와 끈기가 뒷받침되지 않은 재능이란 반짝 빛났다가 영구히 사라지는 폭죽 같은 것이다. 일시적인 찬란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엉뚱한 창의력을 신뢰하는 만큼이나 우직한 성실성을 믿는다. 일하는 자의 행복을 아는 사람만이 좌절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구절 중에 '포도밭의 비유'라는 게 있다. 포도밭을 가꾸는 주인이 있었다. 수확철이 되어 일꾼을 모집했다. 그런데 오전부터 일을 시작했던 사람에게나 오후부터 시작했던 사람에게나 모두 똑같은 일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을 늦게 시작한 사람부터 지급했으니 당연히 일꾼들 중에는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자 포도밭의 주인은 '물질적인 임금은 같지만 노동에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동등하지 않으니, 나는 매우 공평하게 처리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일하는 기쁨과 행복은 조금밖에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어 비로소 공평해졌다는 뜻이다. 임금이라는 '결과'보다는 일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원지동 전원주택은 내 삶의 상징이며 자랑이다. 고즈넉한 청계산 자락을 뒤로하고 자리잡은 이 집은 내 꿈과 아이디어가 총동원된 작품이다. 어느 누가 찾아오더라도 감탄을 이끌어낼 만큼 모든 것이 아름답고 기능적이다. 그 집을 짓는 동안 내가 느꼈던 행복과 기대는 대단했다. 집을 짓는 동안 우리 가족은 별 수 없이 천안에서 잠시 살았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다니던 교회를 가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차를 몰고 서울에 올라왔다. 일단 서울에 도착하면 짓고 있는 집이나마 보고 싶어 몸살이 났다. 그래서 항상 일부러 멀리 돌아 원지동 집터를 꼭 한 번은 바라보고 지나가야 했다. 집이 완성되고 나서 한 일주일쯤은 잠을 못 이룰 만큼 감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감격은 그걸로 끝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10년을 살아온 집처럼 도로 시들하게 느껴졌다. 이 집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행복을 느꼈을 때는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짜던 1년 동안의 건축기간이었던 것이다.
집사람은 나에게 이제 그만 뒤로 물러나서 편안하게 살아보자고 한다. 나라고 그러한 유혹에 항상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일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유혹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느 구두쇠 이야기를 생각한다. 끼니까지 걸러가며 평생 돈을 모은 구두쇠가 있었다. 나이도 먹고 돈도 모일만큼 모였다고 생각하자 그는 이제부터 즐기며 살다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죽었다. 그를 살게 했던 것은 내핍과 긴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미래산업은 이제 내가 없더라도 탄탄하다. 앞으로도 훌륭한 미래인들이 계속 그 탄탄함을 유지하고 키워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새벽 네시에 일어나 여섯시에 출근한다. 회사에는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직원들을 못 믿어서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나를 위해서 일선을 지킨다. 일하는 즐거움과 과정의 행복을 공연히 포기할 이유는 없다. 나는 죽는 날까지 상상력을 동원하며 모험을 즐길 것이다. 마누라한테는 항상 이렇게 대답해주곤 한다.
"나더러 죽으란 말야? 이 재미있는 걸 왜 그만둬."
그러면 마누라는 말없이 웃으며 혀를 찬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내 고집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일하는 자의 행복을 아는 사람만이 좌절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일하는 기쁨과 행복을 조금밖에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어 비로소 공평해졌다는 뜻이다. 나는 단지 나를 위해서 일선을 지킨다. 일하는 즐거움과 과정의 행복을 공연히 포기할 이유는 없다. 나는 죽는 날까지 상상력을 동원하며 모험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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