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말하기
우리는 말을 할 때는 주로 말소리를 이용한다. 그리고 억양과 음색을 이용하여 그 의미를 정교하게 만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들 스스로 잘 인식을 못하고 있다. 바로 표정이다. 표정 가운데서 매우 유의미한 것이 ‘눈길’이다. 눈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집중도, 상대방의 반응 파악, 공감 표현 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화를 하면서 눈길이 상대방을 향하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새 나가고 있는 것 같으면 사실 딴 데 신경을 쓰고 있거나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반면에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면 무언가 강렬한 의도가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말할 때는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기가 이야기할 때는 눈을 가볍게 내리까는 것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가볍게 웃음기를 띠고 이야기를 하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반대로 상대방을 지나치게 응시하면 매우 부담스럽기 마련이고, 일종의 ‘공격적인 행위’처럼 받아들여진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남의 행색이나 소지품을 신기하다는 듯이 지나치게 응시하는 행동은 그렇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 옆사람이 보는 신문이나 태블릿에 눈길이 잠시 갈 수는 있지만 좀 심하면 본의든 아니든 큰 실례다. 관심이 생긴다고 해서, 궁금하다고 해서 눈길을 아무 데나 함부로 던질 수는 없다. 눈길은 말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대단히 부담스럽다. 눈빛이 강렬한 사람의 모습을 쉽게 잊을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상대방을 똑바로 응시하는 태도는 문화권마다 서로 다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말보다도 더욱 감성 전달력이 높은 눈길은 그만큼 더욱 신중히 사용해야 하는 소통 도구이다. 적절히 응시하고 적절히 내외할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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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민주주의
언어로 사회를 민주화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그래서 더 의로운 표현을 하기도 하고 기존의 어휘를 새롭게 혁신하기도 했다. 영어에서도 양성 평등 운동에서 여러 가지의 언어적 실험과 혁신이 일어났다. 우리 한국어에서도 그리 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시도를 한 일이 있다.
1987년 이 땅에 본격적인 민주 헌법을 마련하고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시절, 그해 여름에 큰 수해가 났다. 수해 복구를 위해 나선 주민들과 군인 및 공무원들의 노력을 보도하면서 우리 귀에 익숙하던 ‘군관민’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민관군’이라고 고쳐 표현했다.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 되는 것이니 무언가 어색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우리의 언어적 민주화 과정을 반영하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표현의 순서만 그럴듯하게 바꿔놓았을 뿐이지 그 이상의 노력이나 지속적인 자기 갱신 노력은 별로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의 퇴행 현상만이 여기저기서 목격될 뿐이다. 깊은 고민 없이 이 말을 대충대충 써온 것이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몇 가지 갈등이 생기면서 ‘당정청’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순서도 어찌 보면 대단히 민주적인 서열을 보여준다. 정당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정부, 그리고 맨 나중이 청와대란 뜻이니 얼마나 반권위주의적이며 얼마나 바람직한 정당정치의 구현인가! 그러나 말의 순서만 그럴 뿐이지 실제로 되어 가는 모양은 완전히 거꾸로가 아닌가?
말을 뜯어고쳐 사회 혁신에 기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행동이 따라야 한다. 언어는 뜻을 드러내는 기능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실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말 순서만 그럴듯하게 바꾸어 놓고 구체적인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언어는 위선과 궤변의 도구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인 언어는 민주적인 실천을 필요로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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