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1
'남녘의 오징어가 북녘에 가면 낙지가 된다. 남녘의 낙지를 북에서는 서해낙지라 한다. 북한의 오징어는 남한의 갑오징어이다.’ 남북한 언어 이질화를 다룬 자료는 물론 언론을 통해서도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에서 1965년에 발행한 5전짜리, 2000년에 나온 1원50전짜리 ‘낙지 우표’는 ‘남북한이 달리 부르는 오징어’를 확인해 주는 증거이다. “개성에 가서 ‘마른 낙지’를 사왔다. 분명 ‘마른 오징어’였다”, “금강산에 가보니 오징어를 낙지라 하더라”는 북한어 연구자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광복 직후 문세영이 엮은 <수정증보 조선어사전>(1946년)의 오징어는 ‘몸은 작은 주머니 같고 열 개의 발이 있으며 등 속의 작은 뼈 같은 흰 물건이 있는 해산동물’이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가 펴낸 <조선말대사전>(2006년)의 설명 ‘(낙지) 몸은 원통 모양이고 머리부 량쪽에 발달한 눈이 있다. 다리는 여덟 개인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오징어(북한의 낙지) 다리가 8개 ‘2개의 촉완(觸腕)과 8개의 다리가 있고…’(두산백과)를 참고하니 의문이 풀렸다.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 쓰는 양쪽으로 길게 달린 두 개를 발로 셈하지 않은 것이다.
옛 문헌의 오징어(오적어, 烏賊魚)는 지금의 갑오징어를 가리킨다. ‘(오징어) 뼈는 두께가 3~4푼 되고 작은 배와 비슷하며 가볍고 약하다’(동의보감, 1610년), ‘등에는 기다란 타원형의 뼈가 있다’(자산어보(현산어보), 1814년), ‘오징어 뼈를 우물 가운데 담그면 잡벌레가 다 죽는다’(규합총서, 1809년)에 등장하는 오징어는 하나같이 지금의 갑오징어(참오징어)를 일컫는다. ‘군산 죽도 어장에서 많이 잡히는 것은… 민어, 오적어 등이니…’(황성신문, 1903년)에서처럼 구한말 신문에 나오는 ‘오적어’도 갑오징어이다. 죽도에서는 지금도 갑오징어가 잘 잡힌다. 오징어는 원래 갑오징어였고, 북한에서는 지금도 갑오징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징어라 부르는 것은 옛날엔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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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2
갑오징어, 건오징어, 마른오징어, 물오징어, 뼈오징어, 일본오징어, 오징어, 참오징어, 한치오징어, 화살오징어.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오징어족’이다. 갑오징어(뼈-, 참-), 마른오징어(건-), 생것을 가리키는 물오징어와 이를 두루 이르는 오징어를 빼면 달랑 다섯 종류뿐이다. 입술무늬갑오징어, 흰오징어, 창오징어, 화살오징어, 참갑오징어, 살오징어, 빨강오징어, 날개오징어, 지느러미오징어, 쇠오징어, 좀귀오징어…. 사전 밖, 바닷가의 오징어 명칭은 참으로 많다. 이 가운데 갑오징어 종류가 아닌 것들은 옛날에 ‘-꼴뚜기’라 불렸던 것들이다.
옛 문헌에 나오는 오징어(烏賊魚, 오적어)는 지금의 갑오징어를 가리킨다. ‘요즘 오징어’는 뭐라 했을까. “모양은 오적어(지금의 갑오징어)와 닮았지만 몸은 더 길고 날씬하다. 등에 타원형이 아닌 종잇장처럼 얇은 뼈만 있으며, 이것을 등뼈로 삼는다. 선비들이 바다에서 나는 귀중한 고기라 하여 ‘고록어’(高祿魚)라고 불렸다.” <자산어보>(현산어보)에 나오는 설명은 오징어를 묘사한다. 고록어는 꼴뚜기의 옛말이다. 꼴뚜기가 곧 오징어인 것이다. 현대 생물학 사전 여럿은 오징어를 여전히 ‘피둥어꼴뚜기’로 설명한다. ‘흰꼴뚜기’, ‘창꼴뚜기’, ‘화살꼴뚜기’, ‘반원니꼴뚜기’ 따위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분류한 오징어 종류의 명칭이지만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남한의 갑오징어가 북한에 가면 오징어가 되고, 남한의 오징어를 북한에선 낙지라 한다. 남도의 낙지를 북에서는 서해낙지라 한다. 오징어가 옛날엔 꼴뚜기 종류를 이르는 말이었고 오적어는 갑오징어를 가리켰다. ‘참갑오징어가 오징어라는 이름을 피둥어꼴뚜기에게 넘긴 때는 대략 1930년 무렵이었다. 수산업에서 일본식으로 용어가 통일되어가는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설이 있지만 바뀐 시기와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1923년에 ‘울릉도 오징어’, 1927년에 ‘전북 고창의 오징어(갑오징어)’가 신문에 등장하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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