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삼다도, 삼무도, 삼다삼무도. 제주도를 이르는 말이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섬,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각각 많고 없는 특징을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이런 특성은 21세기 제주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바람과 돌은 여전하지만 2014년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여성 우세는 간데없다’인 셈이다. 제주 세태를 담은 삼무도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철도, 고속도로, 국도가 없는 ‘삼무’가 되었다. 도로 총연장은 3200㎞가 넘지만 모두 지방도다. 이 시대의 ‘삼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제주 흑돼지’를 내건 고깃집, 횟집 차림표에 씌어 있는 돔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말 제주에 다녀왔다. ‘고등어회를 맛보고 싶다’는 일행의 뜻에 따라 찾은 횟집은 뜻밖에 한갓졌다. 으깬 얼음 위에 얹혀 나온 고등어회는 기왕에 알던 맛이 아니었다. 소문만 요란한 ‘맛집’과 사뭇 다른 느낌.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선어(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생선)가 아닌 활어(살아 있는 물고기)만 쓰기 때문’이란다. 주인의 자부심 가득한 말이 믿음직했지만 ‘숙성한 회가 더 좋다’는 이도 있으니 꼭 그래서인 것만은 아닐 듯했다. 고등어회를 먹자니, 고도리(고등어의 새끼) 구이 생각이 났다. 갈치 횟감으로 제격인 풀치(갈치의 새끼) 생각도.
우럭볼락을 뼈째 우려낸 뽀얀 국물의 우럭탕은 별미였다. ‘우럭’ 하면 대개 물고기를 떠올리지만 사전은 ‘우럭’의 본말로 ‘우럭볼락’을 제시한다. 곁들이로 차려진 참돔과 돌돔 구이의 쫀득한 듯 푸석한, 푸석한 듯 쫀득한 맛이 오묘했다. 돔과 도미는 같은 것이지만 본딧말인 도미(20개)보다 준말인 돔(73개)을 붙인 이름이 훨씬 많다.(표준국어대사전) ‘물고기 도미’(약 17만건), ‘물고기 돔’(약 29만건)의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구글) 우럭과 우럭볼락, 돔과 도미. 언중은 발음하기 쉬운 걸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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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해
새로운 맛을 알게 된 때는 혼인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밥상’에 ‘장모 밥상’이 더해지면서 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처가와 본가의 음식 맛은 같은 듯 달랐다. 밥상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맛깔은 미묘하게 갈렸다. 고깃결 따라 찢어낸 장조림과 넓적하게 썰어낸 그것의 차이는 육개장의 걸쭉하고 맑은 국물에서도 나타났다. 김칫국을 먹는 횟수는 줄었고 토란국이 상에 오르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잦아졌다. 난생처음 맛본 음식도 생겼다. 함경도가 고향인 장인어른 덕분이다.
매콤 새콤한 맛에 비릿한 느낌 살짝 묻은 독특한 향이 입안에 퍼지던 때를 기억한다. 조밥에 고춧가루, 무채 따위를 양념해 참가자미를 한데 버무려 삭힌 반찬, ‘가자미식혜’로 알고 있던 가자미식해였다. 무와 고춧가루가 들어가 맵고 칼칼한 안동식혜가 있으니 함경도엔 ‘가자미식혜’가 있으려니 싶었다. ‘식혜’와 ‘식해’?
1963년에 펴낸 <신찬국어사전>은 ‘식해’를 ‘생선젓’으로만 풀이하고, 양주동이 감수한 <국어대백과>(1980년)는 식혜의 2번 뜻으로 ‘생선을 토막쳐서 소금과 조밥과 고춧가루 따위를 넣고 만든 찬’으로 설명한다. 옛날 사전은 ‘식해=생선젓’을 가리킨 셈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1980년대까지는 식혜, 그 이후엔 식해를 쓴 비율이 높아진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식해를 ‘생선젓’과 비슷한말로 제시하면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으로 풀이한다. 설날 ‘고향 맛’을 전한 특집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전을 좇아 ‘-식해’라 했다.
북한 <조선말큰사전>은 ‘생선을 토막쳐서 얼간했다가 채친 무우와 함께 밥을 섞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하여 버무려서 삭힌 반찬’을 식혜라 한다. 함경도 출신 누구는 “함경도에서는 ‘-식혜’라 했다. 엿기름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힘을 얻지는 못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 남한은 ‘식해’, 북한은 ‘식혜’라 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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