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깻잎은 어떤 식물의 잎사귀인가. 엊그제 저녁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다들 조심스레 답한다. ‘술값 내기’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답은 참깻잎과 들깻잎으로 비등하게 나뉜다. 국어사전은 답을 주지 않는다. ‘깨의 잎’, ‘들깻잎과 참깻잎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반찬감이나 한약재로 쓰인다’로 설명할 뿐이다. 나물, 쌈, 장아찌, 절임 등으로 해 먹으며 다진 고기와 두부 따위를 소로 넣어 지져내는 깻잎전까지 조리법이 다양한 재료는 들깻잎이다. 참깻잎은 식용하지 않는다. 한약재로 약용할 뿐이다.
깻잎, 정확히 말해 들깻잎을 즐겨 먹는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재배하고, 먹기도 하지만 일부 지역에 그칠 뿐이다. 입맛을 돋워주는 잎채소로 사랑받는 들깻잎의 강한 향이 외국 사람에겐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들깻잎은 고추장과 김치만큼이나 ‘고향 생각’ 나게 하는 먹거리가 되었다. ‘번데기 통조림’처럼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깻잎 통조림’이 여행객과 군인들에게 인기 품목인 걸 봐도 그렇다.
참깨를 한자어로 백지마, 백호마, 백유마, 진임이라 한다. 참기름은 호마유다. 호마(胡麻)는 참깨와 검은깨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들기름은 법유(法油)라 한다. 들깨는 백소, 수임, 야임, 임자라 한다. 자소(紫蘇)와 잎이 흡사하나 빛깔이 다르다 해서 ‘백소’라 했다. 자소는 차조기와 같은 것으로 일본에서는 ‘시소’라 한다. 수임, 야임, 임자의 ‘임’은 ‘들깨 임(荏)’이다. 그렇다면 흑임자(黑-荏子)는? ‘검은 들깨’가 아니라 검은 참깨, 곧 검은깨다. ‘임자’는 들깨지만 ‘흑임자’는 검은(참)깨인 것이다. 들깨와 참깨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 외국인을 위한 메뉴 설명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시한 ‘깻잎전(kkaennip jeon)’의 설명 ‘Sesame(참깨) Leaf Pancake’는 ‘Perilla(들깨)’로 바루어야 옳은 정보가 된다.
……………………………………………………………………………………………………………… 기림비 1
경남 창원시 상남동 분수광장에는 ‘마디미 기림비’가 있다. 옛 고을 이름인 ‘마디미’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순교성지에는 ‘수영 장대 여덟 순교자 기림비’가 있다. 병인박해 때 처형된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에는 ‘10·28 항쟁 기림비’가 있다. 1987년 6월항쟁의 시발점이 된 1986년 ‘10·28 민주항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전북 남원시 금지면 금지초등학교에는 ‘김주열 기림비’가 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 목정 공원에는 국회의원의 이름을 딴 기림비가 있다.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인터넷 자료를 톺아보며 찾아낸 우리나라의 ‘기림비’다.
‘기림비’는 ‘기리다’의 명사형인 ‘기림’에 ‘기념하여 세운 물건’의 뜻을 나타내는 ‘비’(碑)를 붙여 만든 말이다. ‘기리다’는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위대한 사람 따위를 추어서 말하다’는 뜻이다.(표준국어대사전) 앞서 둘러본 국내 ‘기림비’는 이 뜻에 들어맞는다. ‘위안부 기림비’도 그럴까. 말뜻에 기대어 보면 그렇지 않다. ‘위안부’의 피해와 일제 만행은 잊지 말고 규탄할 일이지 기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공원 조성 및 기림비 설치에 관한 결의안’에는 11번의 ‘기림비’를 포함해 ‘기리다’의 표현이 14차례 등장한다. 미국에 세워진 것, 한국에 있는 것 어디에도 ‘기림비’라 새겨져 있지 않음에도 ‘위안부 기림비’로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어느새 ‘위안부’ 관련한 ‘기림비’가 특정 지역의 조형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를 회복하고 일제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우는 ‘(위안부)기림비’. 달리 부를 이름은 없을까.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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