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1
실바람 타고 솔솔 풍겨오는 향긋한 꽃 냄새, 눈송이처럼 날리는 하얀 꽃 이파리 때문이 아니다. 얼굴 마주 보며 생긋거리게 하는 그 꽃 탓이 아니란 얘기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때문이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풍기는 ‘동구 밖 과수원길’이 아닌, 교정에서 담당 피디(PD)의 전화를 받았다. “엊그제 방송에서 ‘이것과 그것의 이름은 같다’ 했더니 한 청취자가 ‘이번에는 배철수씨가 항복하라’며 잘라 말했다. ‘종류가 다르니 이름도 다르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자료까지 확인해 방송한 내용이었는데….” 피디는 <시선집중>,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기획한 정찬형이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피디가 아닌 것이다. 디제이(DJ) 25년째를 맞은 배철수 또한 엉너리하게 방송하지 않는다. 이들은 왜 ‘항복 요구’를 받아야 했을까.
대한민국에서 흔히 ‘아카시아’라 부르는 나무는 ‘아까시나무’이다.(위키백과/두산백과) ‘아까시나무’는 1873년 일본에 들어와(일본위키), 1911년 이 땅에 첫 뿌리를 내렸다.(브리태니커) 일본을 거쳐 도입될 당시 이름이 ‘아카시아’(acacia, アカシア)였다.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에 잘못 알려진 이름으로 여전히 불리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자라는 ‘아카시아’와 혼돈을 피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아까시나무’라 부르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반인이 ‘진짜 아카시아’를 볼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박석근 한국식물원연구소장) 국어사전 여럿도 둘을 구별해 설명하면서 뜻풀이 두 번째로 ‘아카시아=아까시나무’라 밝히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한동안’ 그랬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어쨌든, 둘은 식물분류상 분명히 종류가 다른 것이다. 배철수는 항복해야 하나? 이 정도를 몰랐을 제작진이 아니다. ‘규범사전’에 기대면 얘기는 달라진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위한 변명’은 다음 주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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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얘기를 했더니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뜻을 전해주었다. 학계에서는 해묵은 논쟁거리였지만 관련 설명을 낯설게 받아들인 독자도 꽤 여럿이었다. 전문·백과사전에 나오는 ‘아카시아’는 상록교목으로 열대와 일부 온대지역에 산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볼 수 없는 나무인 것이다. 이 땅에 사는 식물의 원래(?) 이름은 ‘아까시나무’로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낙엽교목이다. 1950년대 이전 자료에는 ‘아까시(나무)’, ‘아카시(나무)’, ‘아까시야’, ‘아카시아’ 등 다양한 표기가 나온다. 둘의 이름을 혼동해 부른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다.
“언중이 그렇게 알고 널리 쓰는 말은 인정해야 한다. 전문용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아까시나무’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안상순, 국어사전 전문가), “상록수인 ‘아카시아’를 본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문 영역이 아니라면 낙엽교목을 ‘아카시아’로 인정하는 게 맞다”(박석근, 한국식물원연구소장), “일부 교과서에서 ‘아카시아는 열대지방 나무이므로 아까시나무로 부르는 것이 옳음’이라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정이라 본다. 학명으로는 ‘아까시나무’라고도 한다 정도로 하는 것이 어떨까”(이승구, 교학사 부회장).
학계와 현장의 소리는 하나로 모인다. ‘아카시아’를 인정하고 필요할 경우 ‘아까시나무’를 병기하는 것이다. 아카시아: 1.‘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2.‘아까시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은 ‘아카시아=아까시나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나라에 있는 나무는 ‘아카시아’…”라 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규범사전’을 따른 것이다. 뜻풀이에서 상록교목인 ‘아카시아’가 사라진 점은 아쉽다. 국어원은 “식물 전문어 감수 내용을 반영한 것이지만 설명이 이상하다는 지적이 있어 정보보완심의회에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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