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교열
언론이 최고 권력을 욕되게 한 일이 여럿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견통령(犬-)’으로 둔갑해 신문에 실린 ‘견통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큰 대(大)’를 ‘개 견(犬)’으로 착각해 벌어진 실수였겠지만 편집자와 신문사 사장이 구속되고 정간 조처가 내려진 사건이다. ‘견(犬)자의 심술’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중국의 한 신문은 ‘전국인민대회(-大會)’를 ‘전국인민견회(-犬會)’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고, 일본의 어느 일간지는 ‘메이지대제(-大帝)’라 할 것을 ‘메이지견제(-犬帝)’로 보도해 곤욕을 치렀다. 모든 경우에 정정보도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학보사 기자 노릇 할 때만 해도 신문은 납 활자로 만들었다. 책꽂이처럼 늘어선 활자함의 낱자들은 식자공의 잰 손놀림을 거쳐 활판으로 변신했다. 교정쇄부터 시작해 초교, 재교, 삼교를 거쳐도 오자 발생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오자) 하나 잡으면(찾으면) 맥주 500㏄’라는 현상(懸賞)까지 나왔을까. 잘못 찍힌 활자 때문에 빚어진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 귀국 행사를 생중계하던 어느 아나운서는 ‘육영수 여수’라 방송해 정보기관 구경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학보사의 오자는 ‘맥주 한 잔’으로 그쳤지만 신문과 방송의 오자와 발음 실수는 치도곤으로 이어지기도 한 것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가 사람 이름 ‘노섭’(Northup)의 철자를 독자 제보로 바로잡았다는 ‘161년 만의 정정보도’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오자 없는 세상’이 꿈이기 때문이다. 오자는 ‘맞춤법 교정 프로그램’으로 웬만큼 고칠 수 있으니 ‘꿈’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교정’만으로 바른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문제다. “일본에서 건너온 ‘수입산’으로…”(ㅎ신문), “유족에게는 보상금, 의료급여 등이 ‘주어진다’”(ㅈ일보) 같은 문장은 ‘교열’로 바루어야 반듯한 문장이 된다. ‘외국산(수입품)으로…’, ‘…등을 지급한다’처럼 말이다.
……………………………………………………………………………………………………………… 전공의
장관을 지낸 여당 최고위원을 만난 적이 있다. 창덕궁 언저리에 있는 밥집에서 여럿과 함께한 자리였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 기억 가운데 식당 이름과 그가 건넨 질문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옥호가 여름에 보라색 꽃이 피며 어린잎과 줄기는 먹기도 하고 꽃은 염색할 때 쓰는 들풀과 같아서였고, 왠지 편안한 저녁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어서였다.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생각은?’ ‘방송을 산업이 아닌 문화로 여겨 달라!’였던 당시 문답이 요즘 정부와 의사협회의 줄다리기를 보면서 생각났다. ‘방송문화’보다 ‘방송산업’이 익숙한 세상에 ‘의료산업’은 새삼스러운 게 아닌 것이다.
지난주 ‘24일로 예고된 대한의사협회 2차 휴진에는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전공의’는 어떤 의사인지 묻는 이가 많다. “의예과(2년)와 본과(4년)를 마치고 국가시험을 통과하면 의사가 된다. 비뇨기과, 정신과처럼 ‘의학의 일정한 분과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의가 되려면 종합병원에서 인턴(1년, 수련의)과 레지던트(4년, 전공의) 과정을 거친 뒤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전문의 자격증이 있어도 ‘펠로’(2년, 전임의·임상강사)를 거쳐야 비로소 ‘스태프’(교수)가 된다. 과정에 따라 기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종합병원 ‘정규직 의사’가 되려면 군복무 등을 빼도 13년이 걸리는 것이다.” 개업의를 하고 있는 전문의의 설명이다.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 ‘전공의’는 레지던트를 가리키지만 관련 법률과 국어사전 뜻풀이는 ‘현장’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인턴(의사면허를 받은 뒤 임상 실습을 받는 전공의)과 레지던트(인턴 과정 뒤에 밟는 전공의의 한 과정)를 아울러 전공의라 하고, 국어사전은 수련의와 전공의를 한뜻으로 보는 것이다. ‘전임의’(펠로)와 병원의 ‘스태프’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현장’과 다른 법령의 정의와 국어사전의 뜻풀이가 ‘2차 휴진’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협회의 맞선 주장처럼 시민을 헷갈리게 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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