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갚음
어느 날 해거름 무렵 한 아나운서가 퇴근했다. ‘좋은 데 가는 모양?’이라는 의례적인 인사에 ‘남이사’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떠났지만 아나운서 몇의 설왕설래는 이어졌다. 빈자리 늘어가는 사무실을 채운 대화는 대충 이랬다. “남이사?” “그러게, (방송에) 써도 되나?” “(인터넷 검색 뒤) 사전에 있네. ‘남이야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뜻.” “사전에 나오면 방송할 때 써도 되겠다.” “어떤 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네. 거기 없으면….” “찾았다! ‘남이사’는 경상도 사투리. ‘내사’와 같은 뜻인데 (사투리 억양으로) 내사~ 남이사~ 그럴듯하지?” 몇 해 전의 일이다.
지난주 점심 무렵에도 비슷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대갚음’은 맞지만 ‘대갚다’와 ‘되갚음(되갚다)’은 틀린 표현”이라는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가 단초가 되었다. 이 가운데 ‘대갚음’만 표제어로 올라 있으니 앞의 정보는 그럴듯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 같은 사전은 ‘분패’의 뜻풀이 뒤에 ‘전번 시합에서의 분패를 되갚아야 한다’는 예문을 들었다. 얼핏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정보다. 이를 두고 국립국어원은 “‘되갚다’는 ‘되+갚다’의 구성으로, 일부 동사 앞에 붙어 ‘도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되-’가 붙은 꼴로 틀렸다고 볼 수 없다. 사전에는 접사가 붙은 말을 모두 등재하기는 어렵기에 접사를 먼저 표제어로 올리고, 접사가 붙은 몇몇의 단어들을 표제어로 삼아 등재하고 있다”고 정리한다.(‘온라인 가나다’)
'남이사’처럼 인터넷 ‘오픈’ 국어사전에는 있고 ‘진짜’ 국어사전에는 없는 게 있다. ‘되갚음’처럼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았으니 바르지 않다고 단언하는 것 또한 무리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반드시 틀린 표현은 아니라는 얘기다. 인터넷 정보 과잉은 말글살이 세상에도 해당된다. 중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안목인 것이다.
……………………………………………………………………………………………………………… 윤석열
국회 청문회에서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 문제’로 논란의 중심이 된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관련한 문의가 있었다. ‘중징계 대상’, ‘국회 청문회 공방’ 따위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하나인데 이름의 소릿값은 전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어찌된 일인가”였다. 신문이야 활자로 ‘찍어 내면’ 그만이지만, ‘소리 내야’ 하는 방송은 따져야 할 게 또 있는 것이다. 뉴스 여러 꼭지를 찾아 들어보니 얘깃거리가 될 만했다. 누구는 [윤성녈]이고 누구는 [윤서결]. 방송사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 방송에서 달리 발음할 때도 있었다.
사람 이름의 발음은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먼저, 한자 이름을 밝혀야 바른 소릿값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표기는 ‘석열’로 했지만 한자가 ‘렬’(烈, 洌…)이면 ‘석렬’로 보고 읽어야 한다. ‘격렬[경녈], 직렬[징녈]’처럼 [성녈]이 되는 것이다. 여주지청장 이름은 ‘윤석열(-錫悅)’이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경우 ‘(문)법’에 바탕을 두고 답하면 [윤서결]이 맞다. “이름 ‘석열’은 ‘ㄴ’음 첨가가 일어날 환경이 아니므로 [윤서결]로 발음하는 것이 적절하다”(‘온라인 가나다’)는 국립국어원의 의견을 따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제, 어려운 문제가 남았다. ‘법’이 만능은 아니기에, 한 자 한 자가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의 한자(漢字)를 ‘독립 단위’로 보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석+열’은 ‘한자어 받침 뒤에 ㄴ을 첨가해 발음’(표준어 규정 29항)하고 ‘받침 ㄱ은 ㄴ, ㅁ 앞에서 [ㅇ]으로 발음’(같은 규정 18항)되어 [성녈]이 된다. 어느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끝? 아니다. ‘법’과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 있다. 당사자가 바라는 것을 따른다는 것이다. 한자의 뜻대로 법관을 거친 유력 정치인 ‘우(祐, 도울)+려(呂, 법·음률)’의 이름을 ‘-우여’로 쓰고 읽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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