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
‘공장 얘기’라는 게 있다. 직장인들이 제 일터를 ‘공장’이라 부르며 회사 관련 화제를 주고받는 일을 두고 이르는 표현이다. 세트 디자이너, 카메라 감독, 편집 감독, 피디, 기자 등 다양한 직종이 모인 방송사의 ‘공장 얘기’는 직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아나운서들의 ‘공장 얘기’에 빠지지 않는 게 우리말이다. 대개 발음이나 어휘를 두고 갑론을박하지만 요즘에는 존대 표현이 도마에 오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엊그제 동료 아나운서 둘이 나눈 ‘공장 얘기’를 봐도 그렇다. “‘팬분’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분’을 남발하지 말라.”(10년차 아나운서, 30대 중반) “‘팬분’이 뭐가 이상한가. 팬을 높이려는 건데….”(새내기 아나운서, 20대 중반) 누구 얘기가 옳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는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분16’의 뜻으로 ‘(사람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앞의 명사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를 제시한다. 사전 뜻풀이를 놓고 보면 ‘팬분’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분’을 남발하지 말라” 한 지적 또한 일리 있다. 아무 데나 ‘-분’을 붙이는 것이 30대 이상 대부분에게는 불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공대법이 발달한 우리말에는 다양한 높임말이 있다. ‘친구’와 ‘형제’처럼 높임말이 따로 없는 경우에 한해 ‘(아버지) 친구분’, ‘(선생님) 형제분’처럼 ‘-분’을 붙여 썼다. 이렇듯 제한적으로 쓰였던 ‘-분’을 여기저기 붙이다 보니 ‘손님분’처럼 우스꽝스러운 표현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런 언어 현상을 어찌 생각하는지 국어학자와 방송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답은 한결같았다. 언어 직관에 거슬리기 때문에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언중 대부분을 불편하게 하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그래서 제시하는 ‘진짜 정답’은 “(방송말을 비롯한 공공언어에서는) ‘-분’의 남용을 지양해야 한다”이다. ‘-분’을 들어내고 높임 조사인 ‘께’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팬분이 준 선물’ 대신 ‘팬께서 주신 선물’처럼 말이다.
……………………………………………………………………………………………………………… 카울
지난주 우리말 관련 회의에 두 차례 참석했다. ‘정부·언론 외래어심의 공동위원회’와 외래어(외국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려 머리 맞대는 ‘말다듬기 위원회’다. 하나는 주한 미 해군 사령관 이름 Franchetti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는 모임이고, 하나는 옷가게 등에서 쓰는 용어인 ‘시즌오프’(season off)를 알기 쉬운 말로 다듬는 자리다. 회의 결과는 ‘프란체티’, ‘계절마감’이었다. 한 달마다 또는 한 달 걸러 여는 정례 회의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섰다. ‘물 새는 자동차’ 기사를 본 뒤였기 때문이다.
‘카울 사이드부 매칭부 실러 도포 불량’, ‘루프패널 매칭부-’, ‘윈드실드 글라스 실런트-’, ‘리어램프 하우징패널 매칭부 실러-’, ‘테일게이트 웨더스트립 조립 불량’…. 자동차회사 내부 문서를 인용한 기사의 표현이다. ‘도포(조립) 불량’을 빼면 죄다 영어를 한글로 표기했다. 후배 아나운서와 그 회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용어 풀이를 청했다. ‘엔진 덮개와 앞날개 접합부 밀봉재 도포 불량’, ‘천장판 접합부-’, ‘앞유리 밀폐제-’, ‘미등 감싸개 접합부-’, ‘꼬리문 틈새막이-’…. 자동차 구조에 생꾼인 여자 아나운서가 한참을 궁리해 내놓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지인이 보낸 답은 ‘햄버거, 파스타, 샌드위치의 한국말 표기는?’이었다. 원어를 들여와 쓰는 게 무슨 문제냐는 뜻이었다.
엔진, 피스톤, 실린더 따위를 ‘발동기’, ‘나들통’, ‘기통’(汽筒)으로 쓰자는 말이 아니다. 언중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동차 용어 중에 낯선 것들을 다듬자는 것이다. ‘윈드실드’(앞유리), ‘대시보드’(계기판), ‘룸램프’(실내등)가 그런 경우이다. ‘물 새는 자동차’를 다룬 기사에서 ‘플로어 패널(탑승 공간 바닥 부분)’, ‘리어 엔드 멤버(후방 사고시 충격 흡수를 위한 꺾임 부분)’처럼 알기 쉽게 풀어준 <한겨레>가 위에 보기로 든 부분 5곳에는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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