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떨림
“험상궂게 생긴 무리들이 도끼를 휘두르며 쫓아왔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내뺐다. 어딘지 모를 어둠 속을 달아나다 끝내 누군가 휘두른 도끼에 찍히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빛을 향해 도망쳤다. 환한 빛의 세상에 문을 넘어서는 순간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내가 죽은 줄 알고 통곡하는 식구들이 보였다. 나를 잡으려던 무리들은 저승사자였음에 틀림없다. 도끼 찍힌 자리에는 진짜 흉터가 생겼다. 빛의 세상으로 넘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한집안 어른의 경험담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임사 체험을 한 것이다.
임사(근사)체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정현채 교수(서울대 의대 내과)는 임사체험 사례가 늘어나는 까닭을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리는 의학 발달 덕분으로 풀이한다.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리는 응급처치는 이제 전문 의료진만의 몫은 아니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제세동기’(AED) 이용은 일반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법으로 널리 알려진 심폐소생술은 심장과 폐(심폐)를 살려내는(소생) 것이라는 것을 명칭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동제세동기’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세동’은 ‘잔떨림’(細動), ‘제세동’(除-)은 ‘잔떨림 제거’이니(표준국어대사전) ‘제세동기’는 ‘잔떨림제거장치’가 된다. 이름만으로는 쓸모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름이다. 엊그제 <한겨레>는 이 장비를 “자동심장충격기(심장제세동기)가 배치된…심장충격기 작동법을 음성과 영상으로 안내하며…”처럼 ‘(자동)심장충격기’로 다루었다. ‘부정맥을 바로잡기 위해 심장에 강한 전류를 순간적으로 보내는 장비’이니 ‘잔떨림제거장치’(제세동기)보다 직관적인 이름이다. 말 다듬기의 참뜻은 언중이 알기 쉽게 하는 쪽으로 순화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