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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 고샅
'계절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무서운 비바람이 우리를 긴장 속에 몰아넣는가 했더니 고개 숙인 벼가 넘실대는 벌판에서는 메뚜기떼가 야단입니다. 어릴 적 추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몽골몽골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가 평화로운 해거름, 고샅에 나와 '저녁 먹어라'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개발 바람에 삶의 모양이 바뀌다 보니 잊혀 가는 말이 많습니다. 위 글에 나온 '해거름'과 '고샅'. 우리의 옛 정서를 담뿍 담은 고유어입니다. '해거름'은 줄여 '해름'이라고도 하는데, 해가 지기 바로 전의 시간대를 뜻하는 말로 한자어로는 '석양(夕陽)' 또는 '일모(日暮)'라고 표현합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의 땅거미 질 무렵인 '황혼 (黃昏) ·박야(薄夜)·석음(夕陰)·훈일(日)'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을 말합니다.
정겨운 말 '고샅'은 '고샅에서 놀다 오너라' '큰길을 벗어나 어둠이 가득 괸 고불고불한 고샅으로 들다 보면 순간 무서운 생각이 엄습하곤 했다'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길'과 관계된 말입니다. 흔히 집 밖이나 마을 밖을 '고샅'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는 집의 담과 담 사이 골목길을 의미합니다. '고샅'을 소리나는 대로 적어 일부 지방에선 '고삿'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삿'은 '초가 지붕을 일 때 쓰는 새끼'란 의미로 전혀 다른 말입니다.
참고로 표준어 규정을 만들기 전에는 이런 의미의 '고삿'과 좁은 길의 '고샅'을 구분하지 않고 '고샅'하나로만 표기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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