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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말지 말자.
바야흐로 송년회의 시절, 떠도는 숫자가 있다. ‘112’와 ‘119’이다. ‘술은 1종류로, 1차로 끝내며, 2시간 넘지 않게 마신다(밤 9시 전에 마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술은 아예 마시지 않고 공연이나 영화를 보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문화 송년회’를 하는 모임이 꽤 많아졌지만, 맨송맨송한 자리는 왠지 허전하다며 ‘술 권하는 사회’를 좇는 세력은 여전하다. 웬만한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게 폭탄주이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주는 1983년 강원도의 군, 검찰, 경찰 등의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처음 만들어 마셨고, 당시 춘천지검장이던 박아무개가 널리 퍼뜨렸다고 한다.(위키백과)
1986년 이맘때 언론 매체에 처음 등장한 폭탄주는 ‘퇴폐풍조’의 하나로 꼽혔고(ㄷ일보), ‘속칭 폭탄주’로 다루어질 만큼 제도권 밖의 표현이었다.(ㅇ통신) ‘맥주가 담긴 잔에 양주를 따른 잔을 넣어서 마시는 술’인 폭탄주는 술 따르는 잔을 거꾸로 하는 ‘수소폭탄주’에 이어 ‘소폭’(소주+맥주)이 대중화된 세상이 되었다. 폭탄주는 술자리의 역할도 분화시켰다. ‘제조사’가 나왔고, ‘대량제조’가 필요한 곳에는 ‘제조창’도 등장한다. 폭탄주 ‘제조법’의 차이는 여럿이지만 대개 ‘마는 방법’에서 비롯한다.
폭탄주를 만드는 일은 화합물인 알코올을 다루는 것이니 ‘조제’(여러 가지를 적절히 조합하여 약을 지음)라 하는 게 ‘제조’(공장에서 큰 규모로 물건을 만듦/ 원료에 인공을 가하여 정교한 제품을 만듦)보다 원뜻에 어울리는 듯하다. ‘(폭탄주를) 말다’는 표현은 내게 여전히 낯설다. 언어 직관이 ‘밥을(국수를) 말다’처럼 ‘건더기를 물이나 국물에 넣는 것’을 ‘말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술에 술을 섞는 행위’는 ‘섞다, 타다, 배합하다’인 것이다. ‘담그다’, ‘빚다’를 쓰는 것도 괜찮겠다. ‘(폭탄주) 한잔 빚어(담가) 드릴까요’ 하면, 자칫 거칠어질 수 있는 술판이 예스럽게 다듬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 덕에 추억까지 빚어낸다면 금상첨화이고!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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