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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언각비
한숨 몰아쉬기 쉽지 않을 만큼 더운 날이 이어진다. ‘우리말 나들이’ 프로그램 첫 촬영 날도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씨였다. 한여름 사내방송으로 시작해 그해 말 시청자를 만나기 시작한 ‘우리말 나들이’가 올해로 15돌을 맞는다. 방송 프로그램 이전에도 ‘우리말 나들이’는 있었다. 1992년 10월 한글날에 즈음해 16절 갱지에 찍어낸 사내 유인물 ‘우리말 나들이’이다. 종이 규격을 A4, B4로 따지기 전이니 꽤나 오랜 옛일 같지만 기껏해야 20년 전 일이다. ‘우리말 나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당시의 기획 의도는 ‘틀린 우리말을 바로잡아 제 뜻 살려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약 200년 전 조선에도 ‘우리말 나들이’가 있었다. 제목의 뜻이 ‘정확하고 합리적인 말로 이치에 맞지 않는 잘못된 말을 깨닫는다’인 <아언각비>(雅言覺非)가 그것이다. 이 책은 ‘조선 정조 때 정약용이 지은 어원 연구서로 당시 널리 쓰이고 있는 말과 글 가운데 잘못 쓰이거나 어원이 불확실한 것을 골라 고증을 통해 뜻, 어원, 쓰임새 등을 설명한 책’(다음국어사전)으로 말의 어원과 변천도 밝혀 놓았다. 이 책을 뜯어보며 무릎을 친 항목은 이런 것들이다. ‘족(足)은 발이라 말하는데, 사람과 소가 같지 않다’(사람의 것은 발, 소의 것은 족), ‘우리나라 말을 살펴보면 밀(蜜, 꿀)을 약(藥)이라 이른다. 그래서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발을 ‘족’이라 하면 그를 낮잡아 대하는 것이 되고, 약과에는 ‘약’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시원하게 밝혀주고 있다.
유배가 끝난 뒤 늘그막에 접어든 정약용이 <아언각비>를 펴낸 이유는 책 서문에 잘 드러난다. ‘배움이란 깨닫는 것이고, 잘못된 점을 깨닫는 것은 정확하고 합리적인 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배움의 기본은 말뜻 제대로 밝혀 쓰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가르침이다. 오늘은 음력 6월16일, 정약용의 탄생일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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