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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
‘장학퀴즈’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20주년 특집’을 만들기 위해 찾아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한-중 수교 직후였기에 홍콩과 베이징을 거쳐 한참을 에둘러 가야 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칼바람 부는 하얼빈에서 ‘중국 인민’인 재중동포를 출연자와 방청객으로 모시고 진행한 ‘장학퀴즈 20주년 특집’ 제작은 쉽지 않았다. 방송 환경은 열악했고 무엇보다 ‘남쪽 말’과 ‘북쪽 말’의 미묘한 차이를 헤아려야 했다. 그들은 ‘퀴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했다. “‘퀴즈’가 뭔가 했더니 ‘유희’구먼요….”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한숨 돌릴 즈음 출연 학생이 툭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럴듯한 ‘번역’이었다. ‘퀴즈’는 놀이하듯 풀어가며 뭔가를 알아가는 ‘유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 ‘(역사극에 나오는) 사약은 무엇인가’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먹으면 죽는 약’(死藥)이 아닌 ‘임금이 하사한 약’(賜藥)이다. 이처럼 뜻이 헷갈리는 문제를 또 낸다면 ‘노점’을 출제할 수 있겠다. ‘노점’(路店)이라 지레짐작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장사하는 곳’(표준국어대사전)은 ‘노점’(露店)이다. ‘길’(路)이 아닌 ‘이슬’(露)인 까닭은 노천점포(露天店鋪), 그러니까 ‘한데(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에 차린 가게’여서 그렇다.
노점을 ‘거리 가게’, ‘길 가게’로 다듬은 국립국어원의 순화안은 생뚱맞다. ‘노천’의 뜻을 헤아리지 않은 순화어이기 때문이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순수하게 하는 순화(純化)가 아니라, 잡스러운 것을 걸러내는 순화(醇化)이다. 술꾼과 뗄 수 없는 ‘해장’도 제 뜻 가늠해 쓰는 이 많지 않다. ‘창자(腸)를 풂’이 아닌 ‘숙취(?)를 풂’에서 온 말이 ‘해장’이다. 국어사전은 원말 ‘해정’(解<9172>)의 음이 변해 ‘해장’이 된 것으로 밝혀 놓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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