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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장
내 생애 첫 단어장은 중학교 1학년 때 교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것이었다. 단어와 뜻풀이를 새겨놓은 단어장의 크기는 넓적한 성냥갑만했다. 단어장을 만지작거릴 때 손끝에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느낌이 좋았다. 모퉁이 한쪽을 리벳으로 고정한 단어장은 여느 제본처럼 넘기는 게 아니라 부채처럼 펼치는 형태였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단어장 끄트머리 낱말에는 ‘이그재미네이션’이라고 씌어 있었다. 단어마다 발음기호 밑에 한글로 발음을 밝혀 적은 것은 발음기호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배려 아닌 배려였을 것이다.
요즘도 나는 단어장과 함께한다. 영어 단어가 아닌 우리말 낱말을 담아 학생들과 함께 엮어가는 우리말 ‘낱말장’이다. 매 학기 변함없는 우리 반 학생들의 숙제는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낱말(표현)을 떠올려 수업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이 올린 낱말은 하루에 한번은 꼭 써야 한다. 이렇게 낱말을 하나씩 늘려 가면 어느 날 ‘기름진 말밭’을 가꾸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 꼬드기는 게 선생인 내가 하는 짓이다. 훌륭한 글쓰기와 말하기는 어휘에서 비롯한다고 믿기에 그렇다. 학기말이면 학생들 각자가 올린 낱말을 한데 모아 ‘우리반 낱말장’을 만든다.
이번 학기에는 ‘끗발’부터 ‘흰소리’까지 531개를 담아 140쪽 남짓한 제법 두툼한 낱말장을 만들었다. 언젠가 자개바람(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일어나는 바람) 일으킬 굄성(남의 사랑을 받을 만한 특성) 짙은 젊은이들과 엮어내는 낱말장 덕분에 내 마음은 늘 오달지다(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 오달진(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알찬) 학생들이 낱말 톺아보며(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며) 만드는 낱말장은 선생인 내게 가르침을 준다. 한무릎공부(한동안 착실히 하는 공부)는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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