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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 / 담그다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은 날마다 교실을 순시했다. 공책에 쓴 글씨가 반듯한지 검사하고, 느닷없는 질문으로 학생들의 발표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김장철의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은 글월 하나를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뜻을 구별하고 발음해보라 주문했던 적이 있다. 제시 문장은 ‘김치를 담그다(담다)’였다. ‘담그다’를 ‘담다’와 헷갈리거나 [당그다]로 잘못 발음했던 어린이는 눈물 쏙 빠지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바른 표현과 발음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교장 선생님의 가르침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얼마 전 한 일간지 주말판에 ‘빈티지 인삼주 빚는 교수’ 이야기가 실렸다. “DJ 서거날 담고(담그고), 결혼 20주년에 맞춰 담고(담그고)…, 술은 담은(담근) 날과…, 누군가 그런 술을 담아(담가)뒀다는 것…”의 표현은 괄호 안의 것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김치·술·장·젓갈 따위를 만드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서, 익거나 삭도록 그릇에 넣어 두다’(표준국어대사전)는 ‘담그다’이다. ‘어떤 물건을 그릇 따위에 넣다’는 뜻인 ‘담다’가 제자리 아닌 곳에 잘못 쓰인 이 기사는 내용의 유익함과 재미를 떠나 큰 아쉬움을 남겼다.
영국 방송 <비비시>(BBC) 편집자에게 “방송 문장의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비비시 잉글리시’로 유명한 곳이니 ‘심의와 교열부서에서 오류를 걸러내고 바른 문장으로 다듬는다’는 게 정답? 아니었다.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며 “방송의 기본은 문장이다. 문장 구성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저널리스트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어그러진 문장을 쓰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했던 한 언론인의 말도 떠오른다. 어긋난 문장구성과 맞춤법 오류는 기사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팩트체킹’이 기사 작성의 기본 줄기라면 문장을 바루는 ‘스펠체킹’은 그 뿌리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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