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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약 설명서
‘의약품 구입불편, 약국에서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대한약사회의 광고 문구이다.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파는 일반의약품은 20%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70% 이상인 가정상비약을 약국 밖에서 팔 수 있다면 국민들이 더 불편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제치 <한겨레>에 실린 이 광고를 보면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구호가 새삼 귓전을 울리는 듯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의 갑론을박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두고 벌이는 요즘 논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국민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
경구 투여, 진경제, 하제, 동통, 담황색 제제, 제피정…. 약품 설명서에 나오는 표현이지만 웬만한 사람은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말이다. 경구(經口)는 입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니 ‘먹는 약’, 진경제(鎭痙劑)는 ‘경련을 진정시키는 약’, 하제는 설사가 나게 하는 약이다.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은 설사약, 한자어는 지사제(止瀉劑)이다. 동통(疼痛)은 ‘쑤시고 아픔’, 담황색은 ‘옅은 갈색’으로 하면 좋겠다. 사전에는 제피(製皮)만 있으니 ‘제피정’은 가죽으로 거죽을 씌운 알약인가? 여기저기 찾고 물어보니 답이 나왔다. ‘위에서는 녹지 않고 장에서는 녹는 성질의 피막’(<표준국어대사전>)인 ‘장용제피’(腸溶劑皮)에 알약을 뜻하는 접미사 ‘-정’(錠)을 붙여 만든 말을 뚝 잘라 놓은 거였다. 참, 무심하기도 하다.
사전과 약전(藥典)을 참고해야 뜻을 앎직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은 약 이름과 효능, 용법 따위를 사진과 함께 설명한 ‘복약 설명서’를 제공한다. ‘위에서는 녹지 않고 장에서 녹는 캡슐임’, ‘장의 기능을 도움, 유산균 제제’처럼 환자와 의약 소비자가 알기 쉬운 내용을 담은 설명서이다. 염좌를 다듬은 북한말 ‘시그러지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민의 건강과 편의’를 살피는 일은 알기 쉬운 설명서에서 시작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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