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했다. 하느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해 그 일을 막았다. 이후 온 땅의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다. 11장 1절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라고 했듯이, 바벨탑을 쌓기 전에는 세상 모든 사람의 언어가 하나였다.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인류는 바벨탑을 쌓은 죗값으로 오늘날에 이르러 외국어 공부라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직장인 연봉 높을수록 어학 점수도 높다.” 중앙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어학 점수’는 ‘외국어 점수’를 말한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영어 점수’를 말한다. ‘어학’이라는 말에 담긴 뜻은 자못 크다. 사전은 ‘어학’을 ‘어떤 나라의 언어, 특히 문법을 연구하는 학문’ 또는 ‘언어학’과 같은 말로 풀이해 놓았다. 여기에 “외국어를 연구하거나 습득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풀이가 또 하나 달려 있다. ‘어학 점수’라는 말은 이 뜻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어학’의 대중적 쓰임은 그냥 ‘외국어’다. 사전이 ‘외국어’라는 뜻의 ‘어학’을 받아들이면서 너무 거창한 해석을 달고 있지 않나 싶다.
영어 학습 열풍에 온 나라가 휩싸여 있다. 조기 유학도 영어 습득이 일차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어학이라는 격조 높은 낱말로 표현되고 있다. 영어가 과연 어학일 수 있을지?
우재욱/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