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길
올해도 국민과 재외동포 대부분이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을 풍요롭게 즐기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명절에는 오랜만에 그동안 떨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가기 때문에 끝없는 자동차 행렬로 막히는 길이 평소와는 달리 그리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곧게 뻗었으나 단조로운 길이 있는가 하면, 간간이 들꽃이 핀 길섶이 있어서 정겨운 시골길도 있다. 곧게 가다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을 외래어로 ‘커브’(curve) 또는 ‘커브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카브(길)’라고 발음하기도 하였는데 이 영어의 일본말 ‘가부’(カ-ブ)의 영향인 듯하다. ‘굽잇길’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나 사전에만 올라 있을 뿐 아직 입말로는 정착되지 않은 듯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카돗길’이라고 한다. ‘카브’의 ‘브’ 대신에 ‘도’(道)가 들어가고 거기에다가 ‘길’이 덧붙은 형태이다. ‘역전앞’처럼 같은 말이 두 번 들어간 경우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고바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경사, 기울기, 비탈’이라는 뜻의 일본말 ‘고바이’(こうばい, 勾配)이므로 원래의 뜻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고갯길과 같은 경사진 길이 똑바르지 않고 대개 휘기 때문에 이렇게 와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고바이’ 대신에 ‘고바위’로 말하는 지역이나 개인이 있는데, 이는 ‘높을 고’(高)에 ‘바위’가 연결된 것으로 생각해서인 듯하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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