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비틀기(1)
누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들은 쪽에서 고의로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말을 살짝 비틀어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비틀어진 의미는 대중에게 재미있게 전달되기도 하므로, 비틀기가 반복되면 대중의 의식 속에 사실인 것처럼 각인되어 버리기도 한다. 코미디나 유머가 될 수도 있지만, 정치권에서 서로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악의적이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는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앙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신문 칼럼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무슨 얘기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직 대통령이 한 말은 이렇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이 말은 형식이나 내용에 어떤 하자도 없다. 썩 잘 만들어진 말이다. 문장이 간결하고 비유가 명쾌할 뿐만 아니라 대조, 대구(對句)도 잘 이루어져 있다.
전직 대통령이 한 이 말은 문장 형식으로는 복문이다. 앞의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는 종속절이고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주절이다. 종속절은 양보, 전제, 조건 또는 꾸밈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라는 종속절은 양보를 나타내고, ‘건강은 빌릴 수 없다’라는 주절은 주장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말에서 정작 주장에 해당하는 주절은 떼어버리고, 양보를 나타내는 종속절을 부풀려서 ‘머리는 빌릴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비틀었다.
우재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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