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외래어
인터넷도 희로애락이 깃드는 한 공간이 되었다. 떨어져 사는 친인척이 만나거나 동호인들끼리 정을 주고받기도 하고, 다툼질도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그곳도 우리가 살아가는 한 공간이다. 그러나 얼굴이나 이름을 감출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기도 하다. 입말 아닌 글말로 소통한다는 점도 다른데, 이런 특성이 때에 따라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터이다. 아직은 단점이 더 많아 방치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자정 능력이 있으니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순기능을 높이고자 선플(善+‘리플’의 ‘플’) 달기 운동도 해 보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조건적인 선플이 아니라면, 제대로 짚어주는 ‘정플’(正+플)은 어떨까?
영어 ‘리플라이’(reply)를 줄여 ‘리플’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악플’이 생기면서 ‘플’이 마치 ‘말하다’나 ‘대꾸하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이나 한자어인 것처럼 활용됐고, ‘선플’이 가세하면서 그 느낌이 심해진 듯하다. 그러면서 애써 정착시킨 ‘댓글’이 조금은 무색해졌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악플과 같은 언어의 가시 돋침은 말하는 이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언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국어가 갑자기 다른 언어로 바뀐다고 가시가 무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이를 깨닫지 못하고 국어를 문제 삼는 이가 있어 안타깝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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