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짐승이름
온조 43년(서기 25년께) 9월에 기러기 백여 마리가 왕궁으로 날아들었다. 점 치는 일관이 이르기를, “기러기는 백성을 뜻함이니 앞으로 먼 곳의 사람들이 전하께 귀의할 것입니다.” 같은해 10월이 되자 남옥저로부터 20여 집이 백제로 와서 살겠다고 청원을 하므로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삼국사기)
기러기는 하늘의 심부름꾼이었다. 하느님의 불을 별들한테 전하는 제사장 구실도 하였다. 민속에서는, 혼례장에서 예식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 집으로 가져간다. 신부의 어른들에게 절을 하는 전안(奠雁)이라는 의례가 있다. 기러기는 또한 암수가 금슬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홀아비나 홀어미를 일러 ‘짝 잃은 기러기’라고도 한다. 조선 말엽 <규합총서>에는, 기러기를 신의·예절·절개를 상징한다고 적었다. 밤엔 무리 지어 잠을 자되 한 마리는 자지 않고 망을 보며, 낮이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을 피하는 슬기로움을 갖추고 있어 결혼 자리에 기러기를 쓴다고 했다.
기러기는 ‘긔려기’(훈몽자회)였다. 기럭기럭 하며 운다고 붙인 이름이다. ‘긔럭’에 사물이나 사실을 드러내는 접미사 ‘-이’가 붙어 굳어진 것. 풀이 따라 갈매기의 ‘-기’와 같이 ‘기’를 새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어의 ‘가리’(雁), 몽골어의 ‘갈라군’, 터키어의 ‘가즈’와 유연성이 깊어 보인다. 기러기 반가운 소식에 목 빠지는 이들이여.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