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언어예절
한 나라 사람들을 싸잡아 부를 말(호칭)이 없다. 수천만 사람을 묶어서 부를 자격이 있는 이가 누구며, 불러서 대답할 그들이 있긴 하겠는가. 백성·국본은 예스럽고, 아쉬운 대로 인민·국민·동포·겨레 같은 지칭어에다 ‘여러분!’을 달아 부를밖에.
올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건국 60년’만 강조한 탓에 예년 것과는 용어·주제·틀이 달라 말이 많았다. 그런 점을 뺀다면 형식 자체는 꽤 절제되고 다듬은 문장이었다. 단문 위주여서 연설하고 듣기에 부담이 적었고, 평균 어절이 아홉 안쪽으로 무척 짧았다. 단정·비유·설명·약속·의지 …들도 큰 무리 없이 엮이었다. 포괄적 긍정과 희망적 전망으로 뭉뚱그렸지만 앞뒤 60년이란 시공의 폭이 주는 성금도 좀 봤다.
국경일에 걸맞은 말을 빠뜨린 건 큰 흠이다. 국민·동포·민족·겨레에서 ‘국민’은 서른 번 가까이 썼고 다른 말은 한두번에 그쳤다. ‘국민’ 아닌 동포로, 이국에 뼈를 묻은 선열들에다 숱한 ‘재외동포’가 있고, 최근의 ‘귀화 국민’도 정서에서 그렇다. 그러니 ‘북녘 동포’와 함께 적어도 두어차례는 이들을 부르고 외쳐 말로라도 어루만져야 했다.
아직 광복·독립을 못한 이웃 겨레들도 적잖다.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로서 그들의 염원을 지원·지지함과 아울러 침략주의를 경계하는 언급이 반드시 따라야 했다. ‘세계’를 열댓 차례 썼는데, 예나 앞으로나 배달겨레의 최고 실천 이념이라 할 ‘홍익인간’을 내세움만 같지 못하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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