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짐승이름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 후론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여라.(장만)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 않음을 드러내는 옛사람의 시조다.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양의 날(上未日)이 되면 전남 일부 어촌에서는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는다. 양의 걸음걸이나 울음소리가 조금은 방정맞은 데가 있어서다. 제주 쪽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아픈 사람이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풍속도 있다. 설령 약을 달여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 효험이 없다고 믿는다.
한편, 이날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탈이 없다고 믿는 곳도 있다. 그것은 양의 외모와 성질이 온순하기에 그러하다. 여기엔 양이 갔던 길로만 되돌아오는 버릇도 한몫을 했겠다. 윷놀이에서 도·개·걸·윷·모 가운데 ‘걸’에 해당한다.
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서로 암컷을 두고 싸움질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어쩌다 한번 싸움이 붙기 시작하면 뿔로 무섭게 공격한다. 이 때문에 양의 탈을 쓴 이리란 말이 생겨난 성싶다. 말하자면 각축(角逐)을 한다는 말이다.
갑골문으로 보면, 양(羊)은 형성글자로서 숫양을 앞에서 바라보고 그린 글자와 같다. 양은 소와 마찬가지로 신에게 제수로 바치던 때가 있었다. 죽지 않으려는 양(trago)을 잡아 신의 제단에 바쳐 비극의 말미암음이 되었던 것을.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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